자식이라는 선물
벌써 첫째가 태어난 지도 4년이 되었다. 입동 무렵에 태어난, 예정일을 조금 넘겨 태어난 나의 첫 자식. 아직도 4년 전의 그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자연분만이었기에 출산 후 바로 미역국을 먹었다. 미역이 잔뜩 들어간 그 미역국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첫 출산이어서 그런지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흔히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산의 고통도 이겨내고, 그 후 이어지는 고단한 육아도 이겨내는가 보다. 그렇게 쉽게 타인을 위한 전적인 희생이 가능해지는 게 모성애이다. 분명 내가 지치고, 피곤하고, 더 자고 싶어도 그걸 이겨내게 하는 게 바로 자식이다. 과연 삶에서 이보다 큰 선물이 있을까…?
보통 한 사람의 성격은 만 7세 이전에 거의 다 형성된다고 한다. 따라서 첫째는 아직 형성 중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네 살이 되니 그의 특성들이 꽤 많이 보인다. 거기엔 나를 닮은 구석도 있고, 아빠, 혹은 조부모의 어딘가를 닮은 구석도 있다. 말을 하기 시작하고, 좀 더 의사표현이 명확해지면 그의 개성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첫째는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다. 그래선지 노래를 좋아하고, 생각보다 음정에 대한 감각이 좋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목소리의 음색이 달라진다.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강하다. 단체 활동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은 나를 닮은 것 같다.
반면 그가 특별히 흥미 있어 보이는 분야는 모형 만들기이다. 레고나 맥포머스 같은 것을 좋아하고,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나의 dna가 아니다. 나는 색칠하기나 종이 인형 놀이, 글씨 쓰기 등 2차원적인 것을 좋아했다. 이 부분은 아빠쪽에서 유래한 것 같다.
어려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에 무서운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다소 제멋대로인, 자유로운 영혼 같은 면도 있다. 그래서 어떤 규율이나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거나, 버릇없는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내가 너무 수용적으로 키웠기 때문인가 하는 반성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약간 제도권에 반항하는 그런 면들이 분명 있긴 했다. 물론 보통 마음속으로만 그랬지만… 사실 지금도 너무 진지충은 싫어한다.
내가 첫째를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청순함”이다. 어린아이들이 다 청순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첫째의 청순함은 참으로 사랑스럽고, 또 진심이 느껴지는 그런 게 있다. 어떤 예쁜 말을 할 때, 거기에 어떤 계산적인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행복을 표현할 때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나 역시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진실함이 있다.
지난 주말 첫째가 그동안 고대해 왔던 할머니집을 드디어 가게 되었다. 그때의 그 백프로의 순수한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아쉬워서 흘린 눈물. 전화로 할머니의 음성을 듣자 좀 더 격렬해지는 울음소리가 어떤 다른 언어보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미운 네 살이라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참 어여쁘다.
“재현이 생일에 선물로 뭐 갖고 싶어? “라고 물으니 그저 웃으면서 눈만 깜박거린다. 아직 물건에 대한 욕심이나 부모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사줄 수 있는 존재라는, 그런 개념이 아직은 잘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혹은 특별한 결핍감이 없는 것인지도. 그래서 특별히 선물을 사지 않았다. 굳이 무언가를 사주겠다는 마음도 어쩌면 엄마의 욕심인 것 같다.
아무쪼록 4년 간 큰 사건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 나에게 엄마라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달게 해 준 우리 첫째에게 좀 더 특별한 애정을 담아 미역국을 끓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