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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Nov 14. 2024

외숙모가 돌아가셨다

부고에 대한 단상

큰외숙모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 대의 친족이 돌아가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숙모는 우리 엄마와 불과 네 살 차이였다. 이르면 이르다고도 볼 수 있는 죽음이다.


큰외숙모의 카카오톡 프사는 작년 봄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상태 메시지는 “Always be healthy”. 저 메시지를 쓰시고 한 계절이 지나자 뇌종양이 발견되었고, 이후 한 차례 큰 수술을 하셨다. 예후가 좋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별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난 여름 다시 발병을 하셨고, 더 이상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태에 임하게 되었다.


내가 외숙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그러니까 3년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그때 늘 밝으신 그 표정으로 첫째를 안고 있는 내게 환하게 안부를 물으셨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영영 뵙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결코 알지 못했다. 그렇게 건강하시기도 하고, 또 건강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이었다.


조카라고 해봤자 본인 자제들에 손주들까지 하면 손이 많이 가실 텐데, 가끔 이런저런 도움을 주셨다. 신혼집이 외삼촌댁에서 가깝기도 해서 밥도 얻어먹고 간 적이 있고, 우리집에 한 번 구경차 오신 적도 있다. 그러다 첫째를 낳고 나서는, 무슨 집안 행사가 있지 않는 한 뵐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나의 기억 속의 외숙모는 늘 생기발랄한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부고 소식이 참 느닷없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전에도 엄마를 통해 몸이 안 좋으시단 얘긴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잘 와닿지 않았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건강하신데? 늘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며,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셨는데?


이제 외숙모의 모습은 카톡 프사로만 볼 수 있고, 그마저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생전에 누군가를 보고, 얘기하고, 느낀다는 것이 참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저 조카일 뿐이지만, 외숙모의 돌아가심이 참 아쉽고 허무하다. 그건 단지 내가 혈족으로서 외숙모의 부고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한 엄마로서, 혹은 한 여자로서 그 부고를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다.

외숙모는 자식, 남편 모두 잘 뒷바라지를 하셔서 나름 그들을 성공의 반열에 들게끔 하신 엄마이다. 아마 많은 엄마들에 그녀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외숙모는 소위 “남편복, 자식복 많은” 여자였다. 늘 자식 얘기를 하셨고, 자식들이 장성하고서는 그들의 자식을 또한 돌보시곤 했다.


외숙모가 취미가 있었나? 그런 것은 결코 알지 못한다. 나름 있으셨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겉으로 표가 날 만큼 아니었다. 어딜 놀러 가셔도 남편이 놀러 가는 곳을 동행하신 것 같다. 그러니까 늘 남편, 자식이 주가 되고 외숙모는 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외숙모에겐 나라고 주장할만한 게 별로 없어 보였다.


몇 해 전 사촌오빠의 첫째 아들을 보시면서 너무 고됐는지 대상포진을 앓은 상태에서 뵌 것이 생각난다. 그래도 손주 뒤치다 거리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땐 할머니는 원래 다 그런가 보다 했다.


이제서야 깨닫는데, 복 많은 여자라지만 희생도 그만큼 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과 남편을 앞세우면서 끊임없이 나를 지워간 삶 같아도 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대상포진을 앓으면서 봐준 손주는 아주 똑똑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엄마이고, 여자여서 그럴까? 외숙모의 부고가 안타깝고, 또 조금 한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가끔 좀 이기적으로 사셨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고생만 하다 가신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내가 좋아하고 원했던 것을 좀 더 충족하셨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현상태에서 바라보는 외숙모의 돌아가심이며, 따라서 여기엔 나의 욕망이 상당히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무 가족에 부속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나의 바람이다. 그게 설령 그들의 출세와 성공에 아주 긴요한 것이라도 말이다. 왜냐라면 그들의 삶이 내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착잡한 심정이다. 사촌오빠는 그래도 효자였다. 내년 부모님과의 미국여행을 계획해 놓았다고 했다. 때로는 우리가 어떤 일들을 너무 늦게 계획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오빠, 안타깝지만 너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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