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 맛에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전문 미식가라고 하기에는 미식의 경험이나 폭이 일천한 수준이지만, 나름 주변 사람들에게는 미식가로 통할 만큼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타고나기를 감각이 예민한 편인데, 특히 미각이라는 감각을 잘 키워나간 것 같다.
미각은 사실 추억, 특히나 행복한 추억을 소환시키는 작용을 잘한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 유명한 마들렌 일화(마들렌 냄새를 맡으면서 과거의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게 되는 것)는 이와 같은 미각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준다. 나 역시 과거의 어떤 기억이 당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에서 그 음식을 해준 사람, 그 사람의 온정 등을 상기해낸다.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엄마의 음식이 자주 생각나는 것은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유년시절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나는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가 요리하시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보고, 이후 그 레시피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완벽한 재현은 늘 실패하게 된다. 맛내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한때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신념으로 먹는 것을 대충 떼우면서 산 적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면역력도 약하고, 그래서 자주 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먹을 것이 풍부해진 현 사회에서 지나치게 먹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배부른 돼지’나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집은 채식이라는 금욕주의 경향으로 치닫기도 했다.
다행히 내 삶에서는 지금의 남편을 비롯하여 나를 잘 먹여주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했다. 잘 먹지 않아 골골대는 어린양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이렇게 먹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거야.’ 라는 사상을 심어준 여러 고마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혼자 자취하는 처지에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었다. 아직도 나를 잘 먹여준 사람들을 떠올리면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된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댁을 통해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시댁을 가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거부감이 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은 편인데, 특히나 밤과 은행, 당근으로 향을 머금은 부드러운 갈비찜이 일품이다. 아버지는 다양한 미식을 즐기시는데, 나는 과메기와 물회의 맛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어느 음식의 경우엔 친정쪽이 더 맛있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나의 미식의 경지는 더 올라갔다.
사실 나는 음주를 꽤 즐기기도 하는데, 어떤 음식을 어떤 술과 곁들여 먹을 때에는 그 풍미가 훨씬 배가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당분간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가장 맛있는 음식이 타이벡 감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 마트에서 구할 순 없었다.)
음식을 즐기게 되면 생각보다 세상이 즐거운 일로 가득차게 된다. 어떤 날에 누구를 만날 때 어떤 음식을 먹으면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져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은 그런 재미로 사는 것 아니겠나 싶다. 어서 빨리 코시국도 끝나고, 나의 임신 기간도 끝나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그리고 술)을 먹으면서 좋은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