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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an 22. 2022

미식 인생

나는 나름 맛에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전문 미식가라고 하기에는 미식의 경험이나 폭이 일천한 수준이지만, 나름 주변 사람들에게는 미식가로 통할 만큼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타고나기를 감각이 예민한 편인데, 특히 미각이라는 감각을  키워나간  같다.



미각은 사실 추억, 특히나 행복한 추억을 소환시키는 작용을 잘한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 유명한 마들렌 일화(마들렌 냄새를 맡으면서 과거의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게 되는 것)는 이와 같은 미각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준다. 나 역시 과거의 어떤 기억이 당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에서 그 음식을 해준 사람, 그 사람의 온정 등을 상기해낸다.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엄마의 음식이 자주 생각나는 것은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유년시절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나는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가 요리하시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보고, 이후  레시피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완벽한 재현은  실패하게 된다. 맛내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한때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신념으로 먹는 것을 대충 떼우면서  적도 있다.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면역력도 약하고, 그래서 자주 아프기도 했던  같다.) 먹을 것이 풍부해진  사회에서 지나치게 먹는 것을 중시하는 것은 ‘배부른 돼지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집은 채식이라는 금욕주의 경향으로 닫기도 했다.


다행히 내 삶에서는 지금의 남편을 비롯하여 나를 잘 먹여주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했다. 잘 먹지 않아 골골대는 어린양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이렇게 먹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거야.’ 라는 사상을 심어준 여러 고마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혼자 자취하는 처지에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었다. 아직도 나를 잘 먹여준 사람들을 떠올리면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된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댁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시댁을 가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거부감이 나는 별로 없는  같다.)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은 편인데, 특히나 밤과 은행, 당근으로 향을 머금은 부드러운 갈비찜이 일품이다. 아버지는 다양한 미식을 즐기시는데, 나는 과메기와 물회의 맛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어느 음식의 경우엔 친정쪽이 더 맛있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나의 미식의 경지는 더 올라갔다.


사실 나는 음주를 꽤 즐기기도 하는데, 어떤 음식을 어떤 술과 곁들여 먹을 때에는 그 풍미가 훨씬 배가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당분간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가장 맛있는 음식이 타이벡 감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 마트에서 구할 순 없었다.)


음식을 즐기게 되면 생각보다 세상이 즐거운 일로 가득차게 된다. 어떤 날에 누구를 만날 때 어떤 음식을 먹으면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져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은 그런 재미로 사는 것 아니겠나 싶다. 어서 빨리 코시국도 끝나고, 나의 임신 기간도 끝나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그리고 술)을 먹으면서 좋은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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