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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an 20. 2022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들

선택적 유산 및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하여

이제 임신 12주에 접어 들었다.

이 시기부턴 기형아 검사를 하게 된다. (정확히는 임신 10주부터 가능하다.) 병원에서는 기본 검사 및 정밀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 및 각종 염색체 이상 기형아들을 선별하게 된다. 늦어지는 결혼 추세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노산에 속하게 되고, 또 그래서 기형아 임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기형아 검사가 참 중요하며, 많은 임신부들이 마음 졸여하며 검사에 임하게 되는 것 같다. (의외로 사례를 보면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기형아 임신을 하고, 또 선택적 유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요즘 기형아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미 임신 기간에 많은 기형아들이 선별돼서 유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부모라도 정상이지 않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발생하기 마련인 확정된 불행을 짊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농사짓는 벼에서도 가끔 쭉정이가 발생하는데, 인간의 과학은  쭉정이를 이미 출산 전에 제거해 버릴  있게  것이다.


한편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났음에도 엄마의 다양한 사유들로 인해 태어나자 마자 버려지는 아가들도 있다. 이 아가들 중 부적절한 곳에 유기된 아가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죽기도 한다. 이런 아가들은 어쩌면 태어남 자체가 불행이고 고통이었는지도 모른다.


운이 좋게 보육원에 가서 양육되는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되면, 그 중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한다고 들었다. 그 짧은 인생이 그들에겐 어떠하였을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삶이라 생각했기에 쉽게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첫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이런 화두들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논문을 하나 쓰기도 했다. 불행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이기 때문인지 나는 그런 생명들도 가능하면 많이 살릴  일으면 좋겠다.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심을 떠나   있는 생명의 불씨를 꺼트리는 것이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마찬가지로 동물 안락사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


그런데 사실 내가 이와 같은 불행의 경우의 수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나 있을까 싶다. 어떤 삶은 살아감 자체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절망적일 수도 있다. 불행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는 것은 일견 비정해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합리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유기된 아이들이 적절한 가정에 입양되면 친모가 양육하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버려짐 자체는 인간의 어둡고 추한 단면이지만, 입양이라는 아름다운 선기능이 이를 적절히 해결해 주고 있는  같다. 임신  기형아 확정을 받은  유산을 선택한 엄마들이 이후 기형아 단체에 후원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선과 악은 이렇게 양자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쪽이 다른 한쪽의 존립 근거가 되어주기도 하는  같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누리는 다복함을 지나치게 외부에 표출하는 것이 부덕함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가끔 그렇게 되는데, 아직도 내가 부족해서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겐 내가 영위하는 당연한 삶의 조건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게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통해 깨우친 것 같다.


나에게 종교는 없지만, 이와 같은 깨달음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생명윤리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나 종교와 같은 절대선의 이념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여러 합리적인 판단은 그만 정지해 두고, 많은 생명들이  생을 쉽게 져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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