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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an 25. 2022

조리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힘들지만 행복한 역설

첫째를 낳고 나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남들 하는 대로 근처 유명한 조리원을 예약하고, 나름 산후마사지도 고급 코스로 받았다. 자연분만을 해서 그런지 나는 산후 회복이 꽤 빠른 편이었고, 남들이 힘들어 하는 모유수유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이제 슬슬 산후조리에 대해 고민해야  시점에서 나는 지난날의 조리원을 생각해 보았다. 제일 그리운 점은 그곳의 밥이 유명 호텔 음식점에 버금할 만큼 엄청 맛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조리원 밥은 밖에서  주고 사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거기다 나는 미식가인지라…)


둘째는 첫째보다 회복이 느리고, 또 산후조리를 더 잘해야 한다는 맘카페 엄마들의 의견에, 역시나 이번에도 조리원에 가서 좀 쉬다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고, 행복했다. 거기다 첫째의 육아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다 생각하니 금상첨화인 듯 했다.


그러다 어느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그 전문의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그리고 조리원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이었다.  마디로 얘기하자면, “모자동실을 하지 않는 시스템이 신생아에게 좋지 않다.” 것이었다. 대개 산모의 회복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하다 보면 모유수유가 실패할 확률이 크다. (흡연하는 산모더라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이 분유를 먹이는 것보다 훨씬 이점이 크다 할 정도로 소아과에서는 모유수유를 권장한다.) 신생아는 거의 2-3 간격으로 젖을 먹여야 하는데, 모자가 함께 있지 않으면  텀을 놓치게 된다. 그런데 모유는 아기가 직접 엄마젖을 빨아야  자극으로 분비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모유수유를 하려면 출산  아가와 24시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과거를 회상해 보면, 나는 또 아무 생각없이 모유수유가 좋다 하니까 출산병원에서부터 완전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수유콜을 했다. 그 새벽에 조용한 병원 복도를 지나 신생아실을 걸어가는 것이 정말 고단하긴 했다. 하지만 묘하게 이런 피곤함 속에서도 아이에게 솓구치는 본능적인 사랑을 느꼈다. 이 사랑으로 내 몸을 부셔가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조리원에 와서도 나는 열심히, 거의 모든 수유콜을 받았다. 사실 그때 당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가랑 함께 있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에게 둘째가 생긴다면 집에서 아기를 옆에 두고 편하게(?) 모유수유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조리원을 떠날 때쯤 이모님들 아기의 특성에 대해 대강 얘기해 주시는데, 첫째는 새벽에 칭얼댈 때마다 배고픈가 하고 젖병을 물려도 얼마 안 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조리원은 새벽엔 산모들이 푹 자라고 수유콜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찾는 건가 싶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첫째는 엄마품이 그리웠던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새벽에 깨면 엄마품을 찾고, 안아서 살살 얼러주면 다시 자곤 한다. 그래, 열 달 동안을 엄마 몸속에 있었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엄마가 옆에 없으면 얼마나 그리울까. 나는 아기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조리원, 정말 ‘천국’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꿈 같은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그 달콤함을 포기하기로 했다. 첫째 때는 몰라서 그 호사를 누렸지만, 머릿속으로 조리원의 맹점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했는데도 나 좋으라고 조리원에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참으로 모성애는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랑인 것 같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엄마에게는 고단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가끔 엄마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신세 한탄을 하는  같다.  역시 조리원을 포기한  자신이  불쌍하다. (이러다 언제 맘이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째를 출산하고 느꼈던  이해할  없는 감정,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사랑으로 넘치는 역설적인 행복감,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할  같다. 그건  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러한 사랑으로 오늘 나도 이 세상에 존재라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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