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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an 26. 2022

사건을 해석하는 관점

부모와 자식

가끔 과거 어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양자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곤 한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경우일 때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석사논문을 마칠 때쯤 당시의 지도교수님께선 내가 계속 공부를 이어가시길 바랬다. 그리고 영국 유학을 적극 추천하셨었다. 아마도 나름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이상하게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공부를 하다 보면 가끔씩 이렇게 매너리즘이 온다.


교수님께서 원체 진지하셨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께도 우리 교수님이 이러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없었으니 유학은 가지 않게 되었고, 나는 이후 이런 저런 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다 용케 취직도 하게 되었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결국엔 다시 학교로 오게 되었다. (나는 석사와 박사를 각각 다른 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하였다.)


석사를 졸업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근래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석사 졸업 후 유학을 안갔던 것을 마음에 두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보내고 싶었지만 못 보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만약 당시 유학을 가고 싶어 했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갔을 것이다. 내가 유학을 가면 부모님께 부담이 될 것이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나리오는 완전히 부모님의 관점이고 오해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이후의 행보가 그런 오해를 부를 법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당시의 매너리즘을 부모님께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교수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하고 남말하듯 흘렸을 뿐.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엄청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의 시각에서 나는 방황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러다 퇴사를 하고 갑자기 박사과정을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역시나 공부에 미련이 남아서 그렇구나 생각하셨을 것이다. 사실 내가 박사 과정에 진학한 이유는, 너무 어이 없지만 나의 ‘반려견’ 때문이었다. (이걸 또 말하자면 길다.)


나는 본의 아니게 부모님을 오해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이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 했을 때 어떤 반론 없이 적극 밀어주셨던 것도 부모님 마음에 언제나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리라. 이제야 그 마음을 알게 되니 역으로 내가 더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자식은 항상 내가 먼저이고, 부모는 자식이 먼저인 것 같다.


그리고 부모는 생각보다 자식을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당신들의 둘째딸인데, 그걸 모르시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영국 유학을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아왔다면 현재 좀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을 것 같다. (적어도 영어는 더 잘했겠지.)


하지만 나는 내 과거에 대해 어떠한 미련도 없다. 아마 생각보다 야망이 크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현재 내가 박사라는 사실, 그래서 여러 박사님들과 말동무도 하고 친구도 하는 일상이 그저 뿌듯하다. 사람이 소박하면 자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둘째딸은 똑똑하고 의욕도 강해수 뭐라도 될 놈인가 보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둘째딸은 엉뚱한 데가 있어 FM대로 살지 않는 속성이 있었다. 그걸 아직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아마 본인들이 FM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사람은 본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 내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법이다.


만약 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부모님과 내가 반대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내가 속으로 엄청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눈치 보여 말을 잘 못했고, 부모님은 그걸 보고 쟤가 별로 생각이 없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아마 부모를 원망하며 평생의 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경우들을 보곤 한다.) 어쩌면 나는 그 반대였기에 다행인지도…


오늘의 교훈. 하고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라. 나중에 남 원망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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