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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의 종언

내가 공주였나?

by 한박사

오늘은 나의 음력생일이다. ‘음력’이라는 말은 굳이 붙이는 이유는 양력생일도 역시 챙기곤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의 친정 가족들은 음력으로 생일을 챙길 때, 그런 개념이 희박한 친구들에겐 양력으로 생일을 챙김 받는, 얌체스러운 위인이었다.


5월의 딱 중간에 태어난 탓인지.. 한창 만개한 꽃들이 즐비한 시기라서 그런지, 나도 꼭 그런 꽃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으려는 그런 욕망이 강했던 것 같다. 그게 친정아버지의 지나친 사랑 탓이었을 수도 있고. 무튼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나에겐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꽤 과년한 나이에도 나에게는 잘 못하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화장실 청소였다. 언니랑 함께 살던 시절엔 늘 언니의 몫이었고, 혼자 자취하는 시절엔 가끔 오시는 엄마가 해주셨다. 그런 나를 보고 언니는, “네가 공주야?(물론 이 말은 그 밖에도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나의 단점을 딱 짚어낸 말이었다. 허구한 날 책이나 보면서 하루하루의 소박하고 잡다한 일들은 나 몰라라 했다.


올해부터 카카오톡 생일 알림 설정을 끄기로 했다. 그러니까 은근히 나의 생일을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어쩐지 내가 너무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의 이런 공주병은 계속되었을 것 같긴 하다.)


하여간 오늘은 내 생일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다른 날처럼 보낼 것 같다. 우선 남편은 오늘 일찍 귀가할 수 없다. 그치만 내일 연차를 쓰고, 처가에 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세심함을 보여주긴 했다. 케이크도 아마 친정 식구들과 먹지 않을까. 그리고 다정한 시아버지는 매년 그러셨듯이 올해도, 그러니까 항암 투병인 와중에도 “민정이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투박한 케이크 이미지와 함께 보내셨다.


문득 내 주변엔 늘 이렇게 스윗한 남자들이 참 많기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주병에 걸린 것도 어쩌면 그런 탓도 있는 듯?!)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나의 그릇된 자기애와 교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제부턴 좀 자중하고, 남을 더 신경 쓰고 돌보는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자식이 둘이다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이 녀석들의 무수리가 되긴 한 것 같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생일 즈음에서는 남편에게 “이 녀석들, 지 생일엔 엄마에게 감사해야 돼! 내가 힘들게 고생하며 낳아줬으니까! ”라는 멀을 하곤 했다. 그럼 옆에서 남편은 “맞아!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킬게.” 하며 맞장구를 쳐줬다. 공주병은 약이 없는가 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생일날 우리 친정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단 말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언제부턴가 엄마들이 너무 자신을 희생만 하고, 자기 것을 챙기지는 않는 그런 모습들을 나무라는 그런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측면이 분명 있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는 게 뭐냐면, ‘아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행복할 수도 있구나!’라는 것. 그리고 ‘나도 누군가로부터 저렇게 사랑을 받고 자라서 온전하게 클 수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삶의 이치.


남편이 이번 생일은 뭐 갖고 싶냐는 말에, 이제 나도 사십 대가 됐으니 피부과 시술을 좀 해볼까도 했다. 물욕은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든다. (물론 피부가 아직은 그럭저럭 좋기도 하고) 꼭 선물을 받아야만 하나? 늘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확신하는 삶인데, 굳이 쓸데 없이 돈을 쓸 필요는 없다. 그냥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이번 생일에는 그런 자족감으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해피 벌스데이 투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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