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의 이유
또 다시 왔다. 둘째 권태기. 이 녀석은 한 번씩 정말 사람(엄마)을 힘들게 한다. ‘우리 둘 전생에 무슨 사이였을까? 내가 너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무튼 나는 네가 너무 힘들어. ’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특정 자식에 대한 편애가 존재하는 이유. 어떤 놈은 어떤 놈보다 좀 더 애착이 가고 예쁘다. 왜 그럴까? 대부분 예쁜 녀석들은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아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타고나기를 순한 아이라는 것. 이런 건 천성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
둘째는 정말 진상 짓을 자주 한다. 일단 칭얼거림이 잦다. 엄마에게 지나치게 질척거린다. 곧 엄마를 방해하는 때가 많다. 그 결과 엄마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비한다. 동물의 세계는 냉정하다. 나를 해하는 존재는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둘째는 첫째에 비하면 체감상 한 3-4배 정도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이런 경향이 좀 더 심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마 자식이 여럿이라면 꼭 하나는 이런 녀석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좀 더 성가시다고 느끼겠지만, 분명한 건 성가시지 않은 자식들을 좀 더 예뻐하게 될 것이다.
돌이켜 보니 첫째는 정말 착하고 고마운 녀석이다. 일단 차분하고, 요구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녀석이 원하는 거면 대부분 들어주게 된다. 평소의 행동거지에서 엄마의 점수를 딴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사실 엄마의 신경안정제이기도 하다. 둘째에 시달리다 첫째를 보면, “그래, 그래도 육아는 행복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친정아빠가 나를 편애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자질 때문이었다고, 이제서야 납득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편애는 어쩌면 온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나를 힘들지 않게 하는 존재, 아니 나아가 나를 북돋우고 안정시키는 존재, 자식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런 존재는 정말 매력적이다. 무튼 키우면 알게 된다.
둘째는 어젯밤 나의 잠을 방해하며 늦잠을 자더니, 오늘 아침은 새벽부터 일어나 칭얼거렸다. 몸과 마음이 둘 다 지치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밉지만 그래도 자식이니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혹시 자기보다 형을 편애한다고 불평을 한다면, 나는 아주 명철한 논리로 그 이유를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은 현실적으로는 힘들다. 사람이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