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미스테리
남편이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 모임을 나갔다. 나도 결혼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가끔 봤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그 면면을 어느 정도 알고 지내온 사람들로, 대체로 젠틀한 아재들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유부남이었고, 그날 모임은 특히나 유부남들만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와이프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는 대충 그들이 어떤 여자와 결혼했는지도 알고 있다. (그만큼 내가 사람에 관심도 많고, 남편에게 꼬치꼬치 캐물으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들과 결혼한 여자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건이 괜찮은 여자들이었다. 남편 친구들 역시 인물 훤칠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집안도 나름 괜찮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다들 장가 잘 갔네!”라고 했었던 것.
그런데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부부사이의 불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씨는 선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아?” 물으면, 남편도 자기가 아는 선에서 이러이러한 점들 때문인 것 같다고 그랬다. 아무리 봐도 성실하고, 특별히 나쁜 짓(도박이나 바람 등)을 할 것 같지는 않은 친구들이라 나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부부들의 일은 어디까지나 내밀한 것이라 남이 절대 알 수 없긴 하다만.
그런데 어떤 경우는 남편 쪽이 너무 안 돼 보였다. 그의 경우엔 정말 내로라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나름 인물도 준수해서 내가 처음 봤을 때 왜 저렇게 능력 있고 훈남인 사람이 여친이 없을까 하며 나름 관심 있게 봐왔던 후배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돼 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했다. 그런데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그 와이프는 부부 사이의 선을 넘은 것 같다. 시어머니와 싸우다가 면전에서 욕을 한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이란 흔하디 흔한 일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더욱 불거진 일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어머니에게 욕설을 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그 얘길 듣고 남편에게 한 말은 “그런 여자랑 어떻게 살아?”였다. 입장을 바꿔 놓고, 만약 나의 남편이 친정엄마에게 욕설을 한다면? 그건 나에게 욕설을 한 것의 백 배, 천 배의 데미지를 줄 것이다. 나만 이런가??
물론 며느리로서 겪은 어떤 엄청난 수모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배운 사람인데(그녀는 전문직이었다) 남편의 생모에게 욕을 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불쌍한 우리 남편 후배…! 그는 주말마다 있는 유일한 자기만의 여가 시간에 40분씩 줄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파악한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불행한 삶의 도가미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은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린 거의 싸우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보면 이런 우리 부부를 정말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어떻게 부부싸움을 안 하고 사냐고. 싸우지 않고 살다 보니, 나도 그렇게 좋다고 해서 결혼해 놓고 왜 그렇게 증오하며 사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긴 한다. 이왕 사는 거 그냥 좀 사이좋게 살지?!
잘은 모르지만 남편 친구들의 경우에도 결국 쌍방과실일 것이다. 물론 그 과실의 비율이 좀 차이가 나긴 하겠지만. 그러면 잘잘못을 따지면서 다투기보단, 그냥 사과하고 다음부터 좀 더 조심하면 그 분쟁이 좀 더 덜 생길 것이다. 나도 사실 남편에게 스스럼없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그래, 알았어.”, “미안해. “, ”괜찮아. “이다. 어느 심리학 책에서 보니, 정말 사이좋은 부부간에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저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칫 싸움이 될 뻔한 상황에서도 저 말 하나면 모든 갈등이 종결된다. 워낙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또 무한한 이해와 용서도 가능한 것이다. 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부 사이에서 어느 누가 정말 죽을죄를 지을 만큼 큰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작은 불이 큰 불이 되고야 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남편의 친구들에게 나름 어떤 애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계속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그들이 가정에서도 나름 사랑받고, 사랑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제발, 이혼이나 단명 같은 사건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도 우리처럼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있는데(이상하게 다들 아들만 낳았다), 그 아이들도 온전한 가정에서 잘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참 오지랖도 넓지. ㅎㅎ
아이에게 사랑을 쏟고, 그 뒤치다 거리를 하기에도 모든 에너지가 다 빠지는 것이 보통 부부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장 가깝고, 어쩌면 유일하기도 한 우군이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돼버리면 정말 어떤 전쟁에서도 살아남기가 힘들다. 나 혼자 이 전쟁에서 살아남겠다고? 가능은 하지만 정말 고달프고 힘든 삶이다. 아이를 둘 낳고 키워보니, 남편이란 존재는 정말 정말 요긴했다!
내가 부부싸움을 안 하는 이유? 내가 성인군자라서가 절대 아니고,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의 절대적 우군과 이 삶이라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가장 중요한 전력이 바로 “싸우지 말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