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친한 시댁 식구
우리 시누이는 어딘가 좀 괴짜 같은 구석이 있는 아가씨다. 일단 그녀와 내가 말을 섞은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얼마 되지 않는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적이 거의 없고, 어쩌다 말을 하게 돼도 그녀는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단답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엄청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적당히 시누이가 시언니를 향해 갖는 약간의 편치 않은 감정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사실 나뿐 아니라 부모, 형제간에서도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무관심적인(?) 성향의 발현이었다. 한마디로 시누이는 사회성이 좀 많이 부족한, 혹은 그런 것에 거의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광적일 만큼의 애정과 열정을 보였다. 시누이가 꾸준히 하는 취미활동은 의외로 댄스였는데, 주말과 휴일에는 어김없이 댄스 연습을 하러 나갔다. 거의 몇 년을 그렇게 취미 생활에 몰두해 있었고, 거기에 바친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모르긴 몰라도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렇게 그것 없이는 죽고 못 살 것 같더니, 그 댄스학원 원장과 심한 갈등이 생겼나 보다. 그리고 그게 소송을 걸 정도의 증오감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를 통해서 들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의 내 신조는 ‘소송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시누이는 대부분의 사람과 사건에는 무관심했지만, (심지어 조카들을 봐도, 한 번을 예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이 꽂혀 있는 어떤 대상에게는 올인하는 열정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선지 그 애정하는 대상으로부터 조그만 상처를 받아도 굉장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에게 미움을 받아 상종도 하는 인물들이, 남편에게 들은 바로는 꽤 됐다.
어디에나 그렇게 불 같은 성정의 사람들이 있다. 자의식이 강하고, 나름 자신이 똑똑하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한 것 같다. 시누이 역시 명문대 출신이었고, 그래선지 자기 고집을 잘 꺾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공부를 잘해 얻어진 강한 자존심은 기나긴 인생의 길목에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그랬었고, 또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봐왔으니까.
시누이의 그런 강한 성격은 결국 사람을 쳐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인척, 연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이성, 평생의 좋은 친구들이 모두 포함된다. 나는 시누이의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에게 좋은 조언을 줄만한 어떤 유대감이나 애정 같은 것이 없다. 즉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이 그저 그녀의 불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 주변이 적, 혹은 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 아마도 시누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지 않을까.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해서 자신에게 반하는 어떤 사람들은 모조리 나쁜 사람이라고 선 그어 놓는, 어떻게 보면 다소 자폐적인 성향. 지금까지 시언니로서 지켜본 그녀의 삶은 그렇게 늘 배신과 불행이 상존해 있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남편의 여동생이다. 이제 나이도 적지 않고, 그리고 본인의 아버지는 암환자로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본인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란다. 물론 그동안엔 그것이 댄스라는 취미활동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왜 나는 그것에 몰두해 있는 것인지, 거기서 얻는 것이 무언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역시 한때 춤에 몰두하며 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때의 나는 발레에 빠져 있었다. 물론 좋은 취미였지만, 그만큼 또 많은 것을 놓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스스로 나의 주변에 벽을 쌓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지독한 ”자기만족 추구“라는, 어떤 고집과 자존심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좀 재수 없었다..ㅎ
그럼에도 그런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어떤 강한 개성을 타고나서 그 외의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그런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 걸까. 역시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럴 지도…? 그런데 예술이 깊어지면 삶이 외롭고 서글프다. 아니, 반대로 삶이 외롭고 슬프면 예술성이 깊어지는 것일지도. 하여간 내가 발레에 빠져 있을 때의 삶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마디로 나는 “우울했다”고 진단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시누이를 철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조금 가엾게 여기기도 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녀도 달라지게 될까? 그래도 삶은 다양한 것이고, 사람도 그러한 법이니까, 그저 그녀의 삶이 조금 덜 상처가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녀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삶은 존중한다. 그러면서 종종 남편에게 “걔는 도대체 왜 그래??” 하겠지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