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체력 싸움이다
나의 자매들은 친정아빠를 닮아 음주를 잘한다. 그런데 아빠와 다른 점은 규칙적인 운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김장철에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느낀 점이 그거였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똑같구나!”
빈정대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내심 걱정도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가 건강을 잃고 정말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게 불과 6개월 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증상 없는 고열이 며칠간 지속되었고,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물론 내가 흡연을 하거나, 과음을 하거나, 생활습관이 불규칙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외려 대부분의 일반인들보단 비교적 건강에 유익한 생활들을 주로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잘 안 먹었고, 꾸준히 운동하지 않았다. 잘 안 먹은
건 사실 그만큼 몸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식욕이 별로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나이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나도 아이를 둘을 낳고, 어느새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여성은 출산할 때 텔로미어의 길이가 줄어드는 데, 그게 세월로 환산하면 약 11년이라 한다. 믿거나 말거나 박사논문을 쓰면 또 수명이 10년이 짧아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기에 숨만 쉬어도 진행되는 자연노화까지 있다. 과연 내 체력은 과거의 것 그대로일 수가 없게 되었다.
하도 아프니, 나도 절망해서 남편에게 ”어떻게 하면 체력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라고 물으니, 잘 먹어야 한다고.. 그런데 잘 먹으려면, 입맛이 돌려면, 그만큼 몸을 움직여 줘야 한다. 저 질문이 계기가 되어 나름 공부했다. 그리고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할 때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그저 아프지 않으면 운동을 한 시간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렇게 9월부터 시작해서 한 번도 1시간 운동을 빠뜨린 적이 없다. 집안일로 인해 부득이하게 못하게 되는 경우엔 그 시간만큼 다른 날 보충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단 하루도 아픈 적이 없었다.
아프지 않으니 집안일들을 더 잘해나갈 수 있었다. 다른 가족들에게 걱정거리를 던져 주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체력이 좋아지니 일상의 모든 면이 쾌적해졌다. 스트레스로 골머리를 앓는 일도 별로 없게 되었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나 머리도 더 좋아진 느낌이다. (글을 훨씬 빨리 읽고, 이와 더불어 요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래서 운동이 치매 예방?!
젊을 땐 그걸 잘 모르는데, 확실히 인생은 장기전이고, 따라서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아마 누구나 그걸 알 것이다. 다만 실천하기까지가 힘들고, 또 그걸 꾸준히 해나가기가 어려울 뿐. 그래서 결국 하는 사람만 하고…
친정아빠가 내게 물려준 것이 바로 이 운동 습관인 것 같다. 아빠는 본질적으로 유흥을 좋아하는 할머니 쪽을 더 닮았다고 본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늘 절제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본인의 아버지에게 많이 혼나면서 자랐다. 그러면서도 운동하는 습관만은 부친에게서 이어받았다.
아빠의 다른 형제들은 아니었다. 그래선지 아빠가 제일 큰 맏형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재로서는 제일 건강해 보이는 외관과 내실을 갖추게 되었다. 다른 작은아빠들은 이미 큰 수술을 하신 경우도 있고, 당뇨와 고혈압등 여러 대사질환들을 앓고 계셨다. 부모에게서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아도, 하루하루의 삶이 모이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빠도 다소 과음을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나는 아빠가 술을 조금만 절제했다면 본인의 인생에서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걸 보고 자랐을 땐 분명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텐데 자식들이 비슷한 나이에 똑같은 행위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보면, 참 집안 내력이란 게 이렇게 강력한가 싶기도 하다. 나 역시 유전자 어딘가에 저런 알코올 친화적인 성향이 있을 것이다.
조부모님, 그리고 아빠와 그의 형제들을 보면서, 그리고 나의 형제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을 삼게 된다. 그러니까 건강에 해가 될 행동은 점차 자제하고 살아갈 것, 그리고 체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늘 운동을 생활화할 것.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되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2주 정도만 빼고, 거의 늘 정정하셨다. 할머니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똑같이 92세에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80대 말에 시작된 할머니의 치매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했다. 더군다나 할머니의 마지막 5년은 인간적인 존엄성을 유지하는 삶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크고 작은 충격을 받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돈을 들여 의료기관에 의지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자 아예 자신의 어머니를 단념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삶의 난이도가 조금 높아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생래부터 가져온 것들로만은 안 되니까.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인물이 잘 났어도, 중년부턴 철저히 노력이 필요하고, 자기 절제가 중요해지는 법이다. 이것도 어쩌면 타고난 품성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게 없으면 언제라도 무너지기 쉬운 게 바로 건강이다. 그리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나는 자매들에게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엄마, 아빠 대신해서 얘기하는데, 다들 술 줄여.” (내가 맏이도 아님. 운동하라고까진 얘길 안 했다. 그럼 진짜 너무 재수없는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아서.)
어쩌면 더 꼰대 같은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도 과음을 하는 건 집안을 망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엄마다. ) 일단 음주를 즐기는 아내의 남편도 역시 음주를 함께 즐길 가능성이 거의 백프로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자란 자식들은 뭘 배울까? 이건 사실 나의 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는 꽤 연로한 나이에도 술과 고기 먹는 걸 늘 즐기셨고, 자식들 교육(크게 보아 생활습관이나 품성 등을 포함하는)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근면성실하고, 절제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음에도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 성향만큼은 별로 닮지 않았다.
내가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의 근면성실하고, 절제하는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외려 나도 언제든지 흥청망청 즐기는 쪽으로 기울 수 있는 성향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더 운동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건 일종의 불안 기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죽을 만큼 아파봤으니 좀 깨우쳐야지. 아무튼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지금도 매일 운동하시는 우리 아빠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