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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Sep 12. 2023

행복과 불행의 경계

‘나’를 놓아주기

근자에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특별히 자극적인 주제도 아닌데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읽어본 사람들은 이 책의 가치를 뼛속 깊이 체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들을 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저자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과 우울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런 성향은 타고나는 것인가?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네이버 광고에 끊임없이 뜨는 의사 여에스더 역시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력 있는 우울증 때문에 장기간 약물을 복용해 왔음을 고백했으니.)


그러다 오늘 가까운 지인과 연락하던 중 그가 최근 공황장애가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왜? 무엇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20대는 30대에 비해 조금 암울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러니까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조금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곤 했었다. 고시 공부, 채식주의 등등.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시 “나 자신을 이겨내는 것”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그것에 성공해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러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나는 그 당시의 모습 자체로 여러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단지 내가 이 사실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자꾸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내게 입히려고 했었다. 젊음이라는 것은 항상 “발전”이라는 것을 추구하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그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모습에서 좀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에게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언뜻언뜻 엿보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20대의 그 힘든 시기를 거쳐 30대에 조금 편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욕심(?)들을 조금 내려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대상들(자연, 동물, 식도락, 가족애 등)을 인정하고 내 삶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내가 못나지거나 도태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 있고 편해진 모습이 되니 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나도 그랬을법한,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들 특유의 신경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를 풀어주고 나서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된 것 같다. 요컨대 나는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간, 나아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애정이 있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즘은 식물에 대한 애정이 강해져 호접난을 세 촉 사기도 했다. 혹시 난초는 꽃을 피우지만 씨방이 없는 식물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운 식물의 일반적인 수정방식을 난초는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많고 수많은 새로운 난초들이 현재 이 순간에도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천편일률적인 인간사(규범, 삶에 대한 동일한 가치, 그리고 끝을 모르는 욕망과 경쟁)에 비하면 난초의 세계는 얼마나 이상하고, 재미있는지~!


그리고 최근 나는 동네모임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비슷한 또래의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아닌 수다)을 하는 모임인데, 생각보다 유익하고 재밌었다. 평소 다독을 하는 나이기에 모이신 분들에게 이런저런 책을 추천해 주었는데, 나만 그냥 읽고 좋다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보람 있고, 또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아마 그들을 조금 더 즐겁게 해주고, 삶을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인지도…


행복은 그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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