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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Sep 13. 2023

엄마의 로맨틱한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설렘을 싣고

어제 지인 박사님과 통화를 하던 중 그녀가 페이스북의 열렬한 사용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전에도 여러 번 본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평소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많이 만난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요새 누가 페북해요? 페북 한 물 간 거 아니에요? “ 하면서 은근히 놀리곤 했는데, 이번엔 묘하게 설득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쌤, 저도 한 번 다시 해볼게요.” 하고 바로 페북을 깔고, 아주 오랜 시간 묵어 있던 서랍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페북에 들어갔다.


‘이런~! 어럽쇼!!‘


메신저를 통해 낯익은 얼굴의 프사의 그가 몇 년 전 나의 생일을 축하하며 안부를 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보다 더 몇 년 전 나는 한 박사님을 통해(지금은 교수님이 되신) 동양철학 고전 독해 세미나를 하게 됐다. 그때 논어, 맹자를 나름 좀 공부했다. 당시 철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대학원생들이 꽤나 그 세미나에 있었고, 그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그는 얼굴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는데,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직도 철학을 하고 있을까? 나는 결국 이후 법철학으로 박사까지 했는데, 그는 뭐 하면서 먹고살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평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어느새 혼자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 놓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다. 아마도 그가 페이스북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 얼마나 아쉽던지. 그게 그가 단지 송중기를 살짝 닮은 외모였기에 그런 것만은 절대 아니고… 과거의 내 어떤 시절이 현재와 이어질 수 없음을,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 시절과 해후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때 나와 비슷한 또래였던 그와 그 당시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도 조금 후회가 되었다.


여기에 불순한 의도는 별로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남편에게도 솔직하게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으니. “내가 만약 페북을 했다면, 지금 우리 아들들이 없을지도 몰라.”라고 농담을 하긴 했지만. (말을 하고 보니 이 녀석들이 없는 세상을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소중한 자식들…!)


테드 창의 단편소설 중 평행우주론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있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남) 평행우주론은 물리학 이론이긴 하지만 그 이론 자체에는 인간이 모든 경험을 할 수 없고, 따라서 과거의 특정 시점에 무엇인가 하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 혹은 후회의 감정이 어딘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어느 평행우주에선 현재의 나의 자식들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현재의 나의 삶, 특히 우리 아이들이 나의 수많은 평행우주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인 것 같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이겠지.


페이스북 사건은 그렇게 어느 정도의 설렘, 그리고 아쉬움과 함께 종결되었다. 그가 무탈히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철학과 관련한 어떤 일을 한다면, 언젠가 마주치게 될지도~ 20대의 내가 좀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면, 이제는 용감한 아줌마가 되었기에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몇 년 전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준, 그리고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나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사해 준, 그러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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