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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Sep 18. 2023

집에서 애나 보는 이유

대학생 때 만난 한 옆집 아이

“힘들게 공부했는데 집에서 애만 보고 있으니 아깝다.”

 

나의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심심찮게 듣는 말 중의 하나다. 그럴 때마다 아직은 애가 너무 어리다고 얼버 무리긴 하는데, 솔직히 나 스스로도 이렇게 오랜 기간 육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많은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이제 자연스레 일을 시작할 법도 한데, 나의 보육 기간은 다소 정함이 없는 것 같긴 하다. 내가 육아에 다소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사촌언니와 함께 한 원룸촌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평일 어느 날인가, 아마도 강의가 없거나 일찍 끝난 어느 오후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에 이끌려 밖에 나와 보니 옆 건물 창가에서 한 여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마 지금 우리 첫째랑 비슷한 나이쯤 되었을 법한 아이였다. 아무리 봐도 집에 아무도 없어서 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 손을 벌려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보니 바지가 흠뻑 젖어 있었다. ‘옷에다 오줌을 쌌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울었나 보구나!’ 나는 아이를 씻겨 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같이 좀 놀아 주었다. 그러다 저녁 먹을 즈음에 다시 창을 통해 아이를 데려다주었던 것 같다. 그때의 일화를 지금 다시 떠올려 보니 이런저런 문제의식이 든다.


첫째는 아이의 부모는 어디에 가고 아이 혼자 집에 남겨둔 것일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동학대의 소지가 충분해 보인다. 그 아이는 많게 보아도 만 3-4세 정도나 되었을 텐데 말이다.


둘째로 내가 아이를 자취집으로 데리고 가서 적지 않은 시간(아마도 2시간 정도?)을 함께 있었는데도 아이를 찾는 소란 같은 것이 없었다. 솔직히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유괴나 성추행 등 충분히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도 남을 것이다. 이 아이 부모는 자식이 그런 위험에 처해 있음에도 장시간 집 안에 아이를 방치했다.


셋째로 아이가 창가에 서서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고,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그 여자 아이는 이후 어떻게 성장했을까…?

이 사건이 있은 후 그 부모를 만나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 아이를 정성스레 잘 키우셨을 것 같지는 않다.(그 아이는 제법 자기 상황을 설명할 정도의 말은 할 줄 알았다.) 가끔 그 창문을 통해 아빠 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 컴퓨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몇 번 본 적은 있다.


물론 그 부모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내 입만 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딸린 식구가 있으면 그 일은 좀 더 버거워진다. 하지만 그 당시 창가에서 울부짖었던 그 여자아이의 (아마도 조금은 외로웠을법한) 어린 시절 역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방패라 할 수 있는 부모가 집에 없다면, 그 어떤 집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내 마음 한편에는 그렇게 어딘가 아이들에 대한 큰 방패가 되어주고 싶은 맘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여자아이처럼 집에 혼자 두면 바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베이비 시팅을 맡겨도 CCTV 설치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나름 나의 아이의 안전에 대한 방어막은 철저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그 여자아이가 느꼈던 외로움과 부모의 무관심은 다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진 않을까. ‘부모조차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나를 보호해 줄까? ‘ 물론 이와는 정반대로 일찌감치 독립심이 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부모의 온정을 충분히 느끼면서 커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열심히 아이들을 먹이고, 다시 재우고, 놀아주고, 씻겨주면서 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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