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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Dec 20. 2021

박사엄마로 사는 건 어때요?

나는 임신 중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아들은 태어나고 보니 엄마가 박사인 셈이다.

아직 출산을 하기 전, 한 교수님은 나에게 “엄마가 박사이면 좋기도 하고, 좀 부담스럽기도 하겠다.”라고 말했다.


우선 “엄마”라는 정체성을 차치하고, 박사이면 좋은 점이 뭘까?!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동기와 욕망으로 박사가 되겠지만, 나의 경우엔 정말 공부를 원없이 해보고, 또 그만한 환경과 여건이 주어져서, 한 마디로 공부할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나서 좋았던것 같다.

물론 어떤 사람은 공부가 죽어도 싫겠지만, 나의 경우엔 노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어떤 계기(취직, 결혼 등)로 멈추게 된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게 나의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한다.


되돌아와 그럼 박사엄마로 살아서 좋은 점이 무엇일까?!

바로 아쉬움이 없다는 것이다.

젊고 자유로운 지난 날 나는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리고 좀 괴로움이 따르기도 하는 일이지만 학위도 받았다.

엄마는 그래서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

아쉬움이 없으니 아무 미련 없이 그저 무던히 육아를 할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하면 여러 가지 지식들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보단 불확실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어떤 “트렌드”에 잘 휩쓸리지 않게 된다.


출산과 육아는 아무래도 처음인지라 이런 저런 정보들을 습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출산하고 직접 육아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쓸데 없는 정보들도 많았다.

그리고 쉴새 없이 쏟아지는 육아 지식들은 겉으로 보면 다 옳은 소리 같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현실적이거나 모순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공부를 하다 보면 어떤 이론에 강력하게 매혹되다가, 점점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그 이론 자체의 맹점과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연구라는 것이 가끔은 공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어떤 도그마를 깨나가는 게 진정한 연구자의 자세라고도 본다.


무튼 그렇게 가방끈이 긴 엄마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아이를 진정으로 똑똑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아이를 직접 키우다 보면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인데, 책 속에 있는 것을 수학공식처럼 맹신하다 보니 육아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생활이 아니듯이 아이들의 그것도 가변적이다.


또 하나, 나는 공부를 하면서 인간의 언어가 어느 수준에서는 매우 모호하거나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비언어적인 것의 진실성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았다.


아기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낸다.

비언어적인 것(행동, 표정, 소리 등)은 대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가장 좋은 엄마는 단순히 똑똑하고 잘난 엄마가 아니라 이런 비언어적인 것을 잘 캐치해내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본다. 거기에 인내심이 추가된다면 그 엄마는 정말 최고다.

안타깝게도 이런 능력은 대개 타고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꼭 엄마가 아니라도 여러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행복감을 준다.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 역시 위에서 말한 이상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나의 엄마는 사회적 지위, 물질에 대한 세속적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진정한 바람과 욕구를 잘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현재는 은퇴하셨기에 많이 유해지고, 가정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썩 좋진 않아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서는 아빠와 더불어 가장 감사한 분이다.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또 한 가지,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이상”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

왜냐하면 삶이란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목표로 한 것을 이루고 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 같지만, 그 목표 때문에 소홀히 한 다른 것들이 다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우리 인간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나 자신을 보기 힘들다.


따라서 삶은 단순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어떤 거대한 목표나 욕망을 품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만큼 구멍난 부분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늘 주변 말들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리고 너무 나 자신을 희생하고 힘들게 하면서까지 어떤 육아 신조를 지키려 하지도 않는다.

때론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면서 그저 무던하게 아이를 키우려 한다.

따라서 박사엄마라고 특별히 유난떠는 그런 것은 없다.

그저 내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분명하게 확신하면서 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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