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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Oct 07. 2022

집에서의 시간들

아기와 엄마, 그리고 집

내 평생 지금처럼 집에 오래 머물러 있던 적이 있을까? 유치원에 다닐 나이만 돼도 잠깐이나마 집을 떠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나 역시 “아가”라는 티를 벗자마자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특수한 상황이 있지 않은 한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삶은 흔치 않은 일이다.


첫째를 임신하고, 그 힘든 박사학위를 마친 후부터 나는 온종일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게 벌써 2년이 넘었다. 나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생길 무렵부터 지금 이때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서만 머무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시간은 엄마가 아기를 돌볼 때에만 가능한 시간들인 것 같다.


아직  두 돌이   첫째와 백일이   둘째를 함께 돌본다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집에서만 지내면 종종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지루함과 답답함을 달래줄 모종의 활동들(어린이집, 키즈카페, 문화센터 등등)을 거의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나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집을 나와야만 있어야 하는 지난 삶,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무언가 나를 더 발전시켜야만 하기에 집에만 머무를 수 없는 과거의 나의 삶. 그게 행복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탓이다. 오히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집에만 머물러도 되는 삶을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존재와 함께 하는 것,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것, 보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보는 것을 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기들을 보면서 내 삶을 차분히 이끌어나가는 것, 나는 거기서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나름대로 나만의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이 크면 이 삶도 더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삶의 목적 때문에 아이들과 나는 어느 정도 분리될 것이고, 하루 중 몇 시간 정도는 집에서 나와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시간들을 너무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아마 다시 이렇게 집에만 머무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은 내가 삶을 은퇴한 무렵에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작고 소중한 나의 아기들을 돌보는 행복은 없겠지. (그래서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려 하는지도…?)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오면 달려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의 시간이 간절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내게 조금 더 허락된 이 시간들을 더욱 감사히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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