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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n 24. 2023

엄마의 건강

육아가 내 수명을 깎아 먹는 것 같을 때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에게 가끔씩 하는 말들이 있다. “얘네들 키우면서 정말 건강이 나빠진다는 걸 느껴. “,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아. “, ”나의 피와 살을 뜯어먹는

것 같아. “ 날마다 조금씩 뉘앙스는 바뀌지만 결론은 죽지 않을 만큼 힘들다는 거다.


오늘은 웬일인지 등허리, 그리고 하체가 몸살기 있는 거마냥 찌뿌둥하다. 엊그제는 딱히 오래 공복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위장이 쓰린 걸 경험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육아가 더더더 힘들고, 내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어하던 나인데…!


올해 4월쯤 약 잘 짓는다는 한의원에서 보약도 지어다 먹었지만, 사실 크게 좋아진 것 같진 않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엄마의 수고를 좀 덜어주는 때가 와야 내 몸의 발란스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엄마들, 친정엄마, 시어머니 모두 이 과정을 거친 분들인데 참 새삼 대단해!) 그때까진 여기저기 아파가며 몸에 좋다는 거 먹여가며 정신승리 하면서 버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육아하는 엄마들은 기본적으로 “회복”이라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사람이 피곤하면 당연히 푹 쉬고 컨디션을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한 후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는 신조로 살아왔다. 그래서 절대 무리하지 않았고, 그래서 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복”의 타임을 갖는 것도 인생의 어떤 특정시기에는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육아는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오프(off)”가 안된다. 몸은 만신창이더라도 아이 밥을 먹이고, 똥기저귀를 갈아 줘야 한다.


당연히 무리가 가기 마련이고, 이런 상황들이 계속 쌓이면 몸에 적신호가 온다. 저혈압 쇼크는 최근 경험했던 적신호 중 가장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었다. 목이 붓거나 무릎이 아픈 것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하여간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누워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피와 살을 뜯어먹고 산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피, 살뿐만 아니라 뼈도 아프단 말이다.


최근에 충치 치료를 하게 됐는데 두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안 차일피일 미뤄왔던 일이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태어나서 처음으로 잇몸치료까지 받게 됐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엄마들은 상당수가 임신 중 치아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첫째 때 “양치덧”이라는 게 있었다. 양치를 할 때마다 입덧을 해서 구토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 너무 고역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치아가 많이 안 좋아졌던 것 같다. 출산 후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아이 놓고 장시간의 치과 진료받기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치아도 건치가 아니게 되었다.


치아가 안 좋아지게 되니 자연스레 섭식도 좋아질 수가 없다.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도 챙겨 먹기 힘들지만, 어쩌다 그런 기회가 생겨도 이제는 전처럼 “복스럽게” 먹을 수가 없다. 천천히 조심해서 씹어 먹어야 하다 보니 그렇다. 차가운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 것도 이젠 많이 부담스럽다. 인생의 크나큰 즐거움 중의 하나인 식도락을 나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너무 일찍 잃게 된 것 같다.


사실 이것도 내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기에 누리는 여러 가지 생활의 편익이 아니었으면 더 처참한 지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출산하다고 죽고, 무사히 출산 후에는 온갖 질병들에 시달리다가 요절하는 경우가 흔했기에 “새엄마”를 소재로 한 동화가 많은 것이다. 요즘 시대의 엄마는 잘 죽지는 않지만 죽지 않을 만큼 몸이 망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의 숙명인 것 같다.


첫째를 출산 후 나는 내 몸이 부서져도 이 아이를 꼭 지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둘째를 출산한 후엔 사실 그런 마음보단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두 아이 케어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몸은 하나인데 엄마를 바라보는 입 벌린 새끼들이 둘이나 된다. 이때부터 아빠가 없으면 우리들의 생존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우자는 우리 셋의 생명의 끈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죽게 되고, 그러면 이 몸도 단순한 유체물처럼 썩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내 몸 자체를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마치 “옥체”처럼 생각하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애도 둘이나 낳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마음이 조금 바뀐 게 내 몸이 온전해야 이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무사히 키울 수 있고, 또 추후에도 그들에게 큰 누를 끼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곱게 살다 곱게 갈 일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삶의 미션들이 수없이 늘어간다. 종전에는 그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어쩌면 목숨보다도 더 자신의 커리어를 중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이 생기면 게임의 레벨이 갑자기 훨씬 높아지게 된다. 퀘스트 자체가 다양해지고,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충족시키려면 쉴 새 없이 바빠지게 된다. 나에게 건강이란 퀘스트가 이제 게임의 화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단지 나 혼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딸린 두 아들까지 살리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고군분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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