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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n 30. 2023

아이들이 미울 때

둘째는 이쁜이이면서 진상

남들은 나를 자애로운 엄마, 모성애가 지극한 엄마로 보는 것 같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안부를 물으면서 너는 애들 한 번 혼내지 않고 키울 것 같다는 말을 하니 말이다. 실제로는 아빠보다 아이들을 좀 더 많이 혼내는 엄마니 친구는 나에 대해 상당히 착각하는 것.


좀 거칠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어느 시기까지는 개보다 사람 말을 안 듣는 동물이라 생각한다. (애개육아를 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바) 솔직히 개 키우는 거와 비교하면 인간 아기는 엄마 말을 수시로  무시하고, 밥투정도 자주 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만 혈안이다. 아마 개가 이런 식으로 진화하였다면 진즉에 멸종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둘째는 정말 이쁠 땐 너무 이쁘다가도 미울 땐 정말 이런 진상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자체가 좀 텐션이 강하기도 하고, 에너지가 흘러넘쳐 그 에너지를 다 분출시키니 차분한 엄마도 목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커진다. 제법 얌전한 나머지 세 식구와는 완전 다른 돌연변이 그 자체! 이 아이의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둘째를 낳고 나서 눈에 띄게 엄마의 공부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 아이가 엄마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요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긴 하다. 두 남자아이를 키우다 보니 확실히 나의 액티브한 코드가 더 활성화된 느낌이랄까. 앉아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글 쓰고 하는 게 영 힘들다. 열심히 독서할 때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놀아 달라 하면 결국 아이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니까. 육아하는 엄마에겐 몰입, 혹은 집중하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게 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 밉기도 하다. 엄마의 소중한 서재를 여기저기 어질러 놓은 듯한 느낌. (실제로도 그렇고…) 그러다가도 또 쿨하게 공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시대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나라를 구하는 일이 내가 공부하는 것보다 아이를 낳고 잘 기르는 것이 아닐까. 그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좀 씁쓸해지곤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사실 뾰족한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냥 예쁘다. 내 자식이라서 예쁘다. 이 사랑은 그냥 본능이다. 반면 자식에 대한 미움은 이런저런 이유가 달리고 근본적으로는 나의 자원을 빼앗아가니까 그런 것이다. (나의 시간, 에너지, 정신적 산물, 재물 등) 엄마도 결국 본인이 살아야 육아도 할 수 있는 거다 보니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면(너무 내 것을 빼앗아가면) 자식이 미운 것이다.


하여간 우리 둘째는 엄마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아 간다. 엄마의 사랑은 화수분일 수 있지만 체력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둘째의 사랑엔 미움도 상당 부분 공존한다. 밉다가도 씩 웃는 미소 한 방에 마음이 스르륵 풀리기도 하지만. 확실히 첫째에 비해 엄마의 감정이 널뛰기하는 정도가 큰 것 같다.


어쩌다 저런 둘째가 내게 왔을까 생각해 보면, 엄마 삶을 더 다이내믹하게 만들어 주려고, 더 튼튼해지기를 고무해 주려고 왔다 생각한다. 엄마가 너무 공부만 하면 재미 없어지고 건강도 해칠 수 있으니까 더 액티브한 삶을 살라고 온 것 같다. 나도 둘째처럼 강한 에너지로 산다면 더 많은 일을 성취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인생이란 어쩌면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과정이 아닐까. 육아는 끊임없이 엄마의 한계를 극복하길 요구한다. 그 과정 속에 있으면 이게 언제 끝나나 싶은데, 어느새 나는 레벨업이 되어 있는 거다. 그럴 때 이런 기분이 든다. “아, 너희들이 엄마를 성장시켰구나, 나의 한계가 여기가 아니었구나. ” (그래서 언제까지 엄마 극기훈련 해야 하는 거니?ㅜ)


어쨌거나 엄마의 소원은 다음 생에 너네처럼 남자로 태어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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