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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02. 2023

엄마의 시간

과로의 늪에 빠지지 말 것

나에게 주말은 늘상 하는 육아에서 조금 벗어나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보통 병원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 어제는 그 3가지를 모두 한 날이었다. 이렇게 아주 잠깐 머리를 식히게 되면 어디선지 모르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튀어나온다.


사람을 직접, 그러니까 대면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작년 말부터 나는 한 NGO와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건강의 문제로 생각했던 만큼 열심히 참여하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엄마 역할과 그 외의 다른 사회적 역할을 다 함께 하기에는 상당히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사정이 나아지면 그 단체 구성원들과 접촉해서 이런저런 내 생각과 지적 산물 등을 나누곤 했다.


육아가 힘든 엄마에게 육아 외의 일은 늘 부담스럽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혹은 ‘한 발짝 빼기’라는 심리가 어느 정도 병존하는 것 같다. 내가 육아 외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쉴 수 있는 시간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늘 일정치의 노동량이 365일 주어지기 때문에 자칫 계산을 잘못하면 엄마가 과로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봄 내가 그랬었다. 아이들은 좀 더 컸지만 그만큼 육아의 강도가 약해지진 않았고, 자꾸 무리해서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축났다. 몸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던지…! 그때의 심정은 대충 이러했다. 한동안 나 자신을 좀 지우자고. 내가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는 사회적 관계를 좀 잘라 내자고. 왜냐하면 어쨌거나 나에게 육아는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도 만나지 않고, (브런치를 비롯하여) 글도 쓰지 않는 기간들이 꽤 이어졌다. 엄마와 아이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생활이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데 참 무던히도 노력했던 시간들이었다.


솔직히 하루하루 대부분의 시간에서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다. 여기에는 먹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장보기, 음식 만들기)과 먹고 나서의 일(정리, 배설물 치우기, 씻기기)이 다 포함된다. 한 마디로 엄마의 머릿속은 아기새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와 다르지 않다. 그 중간중간에 아주 조그맣게 “엄마”라는 개인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주말의 시간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난 후 혼자 노는 시간들, 아이들 낮잠 시간, 그리고 매일은 아니지만 평소 1시간씩 주어지는 운동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들이다.


그런 자유시간에 나는 대체로 “나의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 그마저도 아이들에게 잠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비밀.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가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한 눈 팔지 말기를 요구한다. (스마트폰으로 브런치를 쓰는 지금 순간에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래야만 자신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니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엄마는 야금야금 나만의 시간을 누릴 생각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언젠가는 너희들의 독립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이유식을 하면서 엄마의 젖에서 분리가 되는 것처럼 서서히 스스로의 힘을 키워 너만의 인생을 혼자 만들어 가야만 할 것이다. 그때 막상 엄마의 인생이 없다면 그것도 슬프고 우울한 일 아니겠니. 막상 그런 때가 오면 너희들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게 너무 아쉽고 허전해서 과거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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