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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03. 2023

오후 4시가 두려운 이유

공포의 하원 시간

한 놈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나 잡아봐라~” 하고 있고, 한 놈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는 유모차가 싫증 난다고 연신 칭얼댄다. 요즘 내가 겪는 하원 후의 풍경이다. 그야말로 첫째의 하원 시간은 엄마의 육아 과정에서 가히 가장 고난이도라고 이를만하다.


첫째의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고, 우리 동의 위치가 좋아 거의 엎어죠 코 닿는 거리에 있다. 그래서 처음엔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둘째가 있더라도 등하원이 그다지 어렵지 않겠구나 했다. 한 아이 더 챙기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단순히 생각했었다. 실제로 등원은 너무 쉽다. 둘이 한 유모차에 태운 후 첫째를 어린이집에 내려 주고 “빠빠이~” 하면 된다.


하원도 첫 두 달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어린이집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첫째를 잠깐 좀 놀리면 됐다. 둘째를 신경 써야 해서 같이 잘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첫째가 노는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그다지 큰 걱정 없이 시간을 보내다 귀가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목을 축일 음료수를 건네주거나 간단한 간식을 주면 어느덧 남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다 첫째가 좀 더 머리가 커지고 나니 매일 노는 놀이터를 지겨워 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늘 어딘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Like me!) 늘상 보는 공간을 벗어난 다른 공간에 가보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녀석을 유모차에 태워 좀 더 멀리 동네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단신으로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불안한 일이다. 우선 차 걱정이 제일 크고, 그다음은 아이들의 불찰로 인한 사고이다. 첫째는 아가 때부터 그렇게 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호기심이 차분함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가끔 예기치 않게 유모차에 내려 제 맘대로 뛰어다니곤 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마트에서 그렇게 “나 잡아봐라“를 하고 싶어 한다. 엄마는 혹시라도 카트에 치일까 봐, 혹은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도망가는 첫째를 잡아 오려고 둘째만 덜렁 유모차에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사실 굉장히 불안한 일이다. (둘째 역시 엄마가 가까이에 없으면 얼마나 불안할까…!) 두 녀석을 한 손아귀 안에 잡아 두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다. 아이가 없을 때는 집 앞 도로나 마트가 그렇게 위험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사실 가장 안전한 공간 집에서도 아이들은 가끔 다친다. 넘어지기도 하고, 벽이나 가구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예견 가능한 것이고, 또 치명상이 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엄마는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집 밖은 늘 예측가능하지 않기에, 아이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무한히 넓기에 불안하고 무섭다. 내가 잠깐 방심하는 사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한 녀석의 술래만 되어도 족하지만 앞으로 둘째가 걷기 시작하면 두 남자아이의 난리법석을 감당해야 할 텐데… 얼른 첫째가 좀 의젓해지기를, 그리고 둘째가 최대한 늦게 걷기를 기도한다. 이럴 때마다 왜 나는 둘 중 하나라도 딸을 못 낳았을까 자책한다. (어린이집 하원 시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을 보면 “와, 딸 육아는 꿀이네.”라고 자주 생각한다. 물론 일반화할 순 없고 여자애들도 비글미가 뿜뿜 넘치는 애들이 있다고는 들었다.)


요즘 보는 책 <암컷들>을 보면, 케냐의 한 원숭이는 어미가 평생 낫는 새끼의 수가 평균 7마리라 한다. 그런데 그중 성인으로 무사히 성장하는 새끼는 2마리뿐이라 한다. 야생은 도시에서 마주치는 위험을 능가하는 수많은 생의 위협이 곳곳에 있기에 그럴 것이다. 정말이지 한 아이를 무사히 성인까지 키워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작가인 츠지 히토나리는 아내와의 이혼 후 싱글대디로 아이를 키웠다 한다. 그가 아이를 가진 뒤 작가로서 가장 달라진 점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에 대한 답으로,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남녀 사이 로맨스의 전통적인 결말이 흔히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진다면, 그 로맨스의 진정한 승자는 아마도 “그 녀석들(자식들)”일 것이다. ㅎㅎ 나도 속았어.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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