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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07. 2023

살림은 노력으로 잘하게 될 수 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금손 엄마가 짱이다

솔직히 친정엄마도 살림을 잘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4남매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셨기에, 그리고 시부모까지 모시고 사셨기에 살림까지 잘하면 그건 이미 인간계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시부모님을 모셨다고 얘기하기엔 어불성설인 것이 엄마가 퇴직하기까진 할머니께서 살림을 많이 도맡아 하시기도 했다. 애들 많은 집이라 정리를 해도 해도 늘 집이 금방 어질러졌고, 어차피 내가 정리정돈해도 누군가 어지럽힌다 생각하니 우리 남매들은 너저분한 것에 익숙한 습성들이 조금씩 있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요리 잘하는 엄마가 제일 부럽다. 거기다 예쁘게 플레이팅도 할 줄 알고, 깔끔하게 정리 정돈도 잘하는 엄마는 정말 흠모할 지경이다. (이런 엄마들하고 진심으로 친구 먹고 싶다. 가까이하면 조금이나마 내가 보고 배울까 봐…) 어딘지 모르게 나에겐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다이어트를 하는 것보다 살림 잘하는 걸 더 어려워하고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입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다. 요리 잘하는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맛잘알들이고, 본인이 먹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나 역시 맛에 예민해서 나름 미식가적인 부분들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먹는 것에 엄청 열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자취하던 시절 친정엄마를 비롯하여 많은 주변 지인들은 내가 매일 뭐 먹고 사는지를 가장 궁금해하고 걱정해했다. 요즘 세간에 뜨는 소식좌만큼은 아니지만, 굳이 엄청 식욕이 당기는 게 아니면 굳이 먹지 않는다는 게 당시 나의 습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식(그리고 알코올)을 즐기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항상 날씬했다.


내가 요리를 비롯한 살림을 못하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쓸데없이 가방끈이 긴 탓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어질러진 아이들 장난감을 얼른 치워야지.’ 하는 생각보다 ‘이 책 재밌네. 이 작가 글 좀 쓰네.’ 하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하니까. 머리가 너무 커서 몸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늘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게 십 수년의 세월에 걸쳐 형선된 습관이라 쉽게 고쳐지진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아들이 하나도 아닌 둘이 온 걸까. 많이 어지럽히고, 많이 먹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낭떠러지 끝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에게 “살림 만능꾼”이 되기를 종용하는 것 같다. 더 맛있게 밥 해주고, 더 쾌적한 집이 되게끔 해야 하는데 늘 차일피일 미루면서 하루하루를 넘기는 것 같다. 아, 역시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인가. (사실 별로 노력한 것 같지도 않다. ㅜ)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솔직히 잠은 별로 없는 편이다. 게다가 찐으로 아침형 인간이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규칙적인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런데 살림을 못한다고? 왜? 왜왜왜!!!? (설마 희생정신이 부족해서 그런가?!) 이런 아내에게 전혀 뭐라 하지 않는 남편에게, 그리고 시부님들에게 너무 감사할 뿐…! 아직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중에 우리 엄마가 살림을 개판으로 하는 여자였다는 걸 언젠가 깨달을 아이들에겐 정말 미안하다.


진심으로 살림 잘하는 비법(꾸준히, 변함없이)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나도 예쁘게 유아식 만들어 주는 금손 엄마 되고 싶은데… (현실은 늘 밥 먹는 시간 되기 30분 전에 뭐 먹을지 고민함) 못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가끔 블로그나 너튜브에 요리 잘하는 엄마들 보면 다시 반성하고,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게 문제다. 그들의 뇌구조를 연구해서 복붙하고 싶다.


일단 밥솥이 비었으니 밥이나 하자. 그리고 솔직히 오늘 저녁 메뉴는 밀키트이다. 첫째는 늘 그렇듯이 어린이집에서 잘 먹고 올 것이고, 나는 점심으로 첫째가 두 입 먹고 남긴 비비고 주먹밥을 먹을 것이고, 둘째의 점심은 후루룩 할 수 있는 두부계란 부침으로 때울 생각이다. 잘 먹으면 저녁도 똑같이 주겠지. 늘 이런 식이다. ㅎㅎ 그래도 언젠가 나도 예쁜 아이들 음식, 간식 만들어서 이런 데에 자랑하고 싶은데… 진짜루! 금손 엄마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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