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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09. 2023

한여름의 주말 저녁

4 식구의 여름 산책

첫째가 태어난 이후부터 아주 오랫동안 저녁 외출을 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집 근처였고, 아무리 길어도 1시간 이상을 밖에 머무른 적이 별로 없다. 밤에 아가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또 장시간의 외출은 곧 이것저것 아기 용품을 바리바리 들고나가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함”이라는 위험 요소와 함께 갖가지 불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되고 난 이후 저녁 외출을 꺼려했다.


그러다 어제 마침내 그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둘째는 이제 곧 돌을 앞두고 있어 밥을 먹을 줄 알게 되었고, 첫째는 어느 정도의 훈육이 통하는 나이가 되었다. 여름 저녁은 해가 떨어져도 쌀쌀하지 않고, 어제는 날씨도 제법 선선한 편이라 저녁 산책을 하기 딱 좋았다. 우리는 과감히 차를 끌고 나와 평소에는 가기 힘든 타 지역 공원에 갔다. 우리 4 식구가 이제 드디어 저녁 외출도 가능해진 것이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행복을 이루는 요소는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있으면 편안한 가족들, 그리고 적당히 맛있는 음식, 그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 거기다 어제는 처음 가보는 특별한 장소까지 더해져 우리 가족들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여름의 저녁 공기는 청량하고,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 사물을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우리의 저녁은 조촐한 김밥~ 그래도 이렇게 나와서 다 같이 먹으니 꿀맛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밖에서 먹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 아이들이 소풍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사방이 탁 트인 예쁜 나무 아래에서 오물조물 먹는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다. 거기다 저녁의 석양 무렵 이렇게 야외에서 식사를 하게 되니 나는 어디 휴양지에 놀러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굳이 해외여행 안 가도 돼.)


그렇게 밥을 먹고 긴 산책을 즐긴 후 우리는 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귀가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저녁 드라이브도 너무 오랜만이어서 좀 낯설었다. 뻥 뚫린 도로 위에서 멀리 보이는 가로등 불빛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가니 그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도 들고, 과거 남편과 단둘이 했던 밤 드라이브도 생각나 회상에 젖기도 했다. 그런데 그새 뒷좌석에 웬 남자아이 둘이 딱 버티고 앉아 있네!


이제 과거의 낭만은 없지만, 둘이었던 때보다 훠얼씬 행복한 느낌이다. 차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더없이 듬직하게 느껴지고, 적당한 아이들의 난리법석도 삶에 생기를 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녁에 이렇게 다 같이 나오니 용감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우리가 더 한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가족이구나!’


앞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우리 넷이 늘 합심해서 무언가를 실행해 나가겠지. 그런데 이렇게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유년기의 십 수년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 세월을 아직 살지 않았지만 과거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결코 길지 않은 시간들이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꼬꼬마인 것이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더 쌓일 우리 가족들의 추억들이 기대된다.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 나중에 곱씹어 보고 싶은 나날들… 그렇게 엄마의 마음속 일기장은 너희들로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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