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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13. 2023

밀란 쿤데라를 기억하며

나에게 철학적인 어떤 면이 있다면

어제 밀란 쿤데라가 작고했다. 작년 무렵 지인 박사님과 수다를 떨다가 그녀가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며, 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너무 좋아하여, 해외에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책을 사곤 한다는, 굉장히 멋진 취향에 감동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나의 20대의 대부분을 그의 소설과 함께한 추억이 있기에 ”그런데 참 그 양반 오래 살아요, 안 그래요? ” 이런 식의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어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별세와 함께 나의 20대도 어쩐지 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과거 내가 참 소중하고 사랑했던 대상들이 점점 잊혀지고 색이 바래지다가 돌연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 같았다. 그 박사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나에게 철학적인 어떤 면이 있다면, 그건 사실 내가 그런 것들에 끌리기도 했지만,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접한 밀란 쿤데라의 책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의 책을 보면서 이렇게 삶을 성찰하는 글을 재미나게도 쓸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소설 편애의 계보는 이후 ‘폴 오스터’로 이어졌고, 이후에는 주로 인문서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 (나에겐 그 둘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주옥같은 글들을 새로 접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구나! “


그의 인생 일대기를 추적해 보면 실로 영화와도 같다. 체코의 공산 정권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천재적인 작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불안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삶이 그의 글을 탄생시킨 것 같다. 그런 소설가를 좋아했던 내가 지금은 그와 반대로 다소 표준적인,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참 반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쿤데라에 빠져있던 20대에 나는 다소 엉뚱했던 것 같기도. 강의는 거의 빠짐없이 잘 듣는 법대생이었지만 그 시간 외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지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무용을 배우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미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 삶은 이후 법철학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아무튼 나에게 좀 독특하고 반골적인 면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밀란 쿤데라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 지금도 내 내면 어딘가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삶에 어느 정도 타협할 줄 아는 기회주의적 성향이 생긴 것 같다.)


향년 94세, 그렇게 건강하고 강인하셨던 나의 조부도 91세에 생을 마감하셨는데, 94세면 참으로 장수하신 거 아닌가! 그래도 그의 글을 영원히 남아 그의 소설 제목처럼 “불멸”한다. 그래서 어쩐지 나는 그가 떠난 게 슬프지만은 않다. 작가는 글로써 말하는 것이므로. 가끔 생각날 때 그의 소설을 다시 한번 펼쳐야겠다. (자주 보는 건 엄마의 정신에 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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