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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16. 2023

돌춘기

둘째의 진상짓과 엄마의 해탈

잠잠하던 둘째의 감정 기복이 돌 무렵이 되니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하루 중 어느 때는 기분이 좋아 깔깔대며 웃다가도 어느 때는 심하게 짜증을 부리면서 진상 짓을 한다. 둘째는 타고난 성량도 큰 편이라 그의 짜증을 들어주다 보면 귀가 아주 쩌렁쩌렁 울린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짐작해 볼 수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유치가 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앓이이다. 첫째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둘째는 인내심이 없는 건지 유독 감각에 예민한 건지 정말 자지러진다. 안아서 얼르기도 하고, 업어서 달래기도 하는데 그의 짜증을 해소시키기에는 모두 역부족이다.


처음 이가 나올 때 아마도 생살을 뚫고 나올 테니 당연히 그게 아무렇지도 않진 않을 것이다. 나도 성인이 된 후 이따금씩 나곤 했던 사랑니가 나름 은근한 고통을 주었으니까. (물론 사랑니 빼고 마취가 풀릴 때가 더욱 아프긴 하다.) 아직 돌이 되지 않은 한 인간에겐 이앓이가 그 생에 동안 겪은 고통 중 어쩜 가장 아플지도 모른다. 이렇게 헤아려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도 부족한 인간인지라 가끔 같이 짜증을 내게 된다.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란 왜 이리 어려울까. 그 대상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나의 웰빙과 행복을 자꾸 방해하면 나도 발끈하게 된다. 그렇게 미워하다가 또 이쁜 짓 하면 이내 나 자신을 반성하고, 둘째에게 미안해진다.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아이의 주파수에 맞춰 감정의 널뛰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돌춘기에 빠진 둘째와 함께 해야만 하는 하루가 힘들긴 하다. 그런데 또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주어질 땐 의외로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변에서 자꾸 “이제 둘째도 돌이 다 되었으니 XX 일 좀 해볼래요? ”, ”이제 밖으로 나가야죠. “ 이런 말들이 나와도 막상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자발적 경단녀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아이들이 힘들어도 역시 아이들 옆에 있어야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있다. 엄마인 나 역시 이렇게 힘든데 아무런 사적 관계도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고 미울까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육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 중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 일이 천직인 사람들도 분명 있고, 그분들께 늘 감사하다.) 특히나 둘째 같이 기복이 심하고 텐션이 강한 아이는 엄마가 적당히 얼르기도 하고 적당히 훈육도 해서 잘 잡아줘야 하리라.


그래도 돌이 되니 저 혼자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으려고 한다. ‘1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구나. 아쉽네!’ 둘째의 걸음마가 나는 한편으로 아쉽다. 그렇게 커버려 아가 단계에서 벗어난 것이니까.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확실히 어느 순간 어린이의 모습으로 변한다. 첫째가 그랬으니 둘째도 그럴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첫째, 둘째 모두 솜털같이 귀여운 모습들이 선하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가 제일 좋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의 덜미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육아는 뭘까. 생각을 해보면 “적당히 기분 좋은 책임감”이랄까. 책임감 때문에 더 참게 되고, 책임감 때문에 더 부지런을 떨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성장은 바로 이 책임감 때문에 더 빨라진다고 생각한다. 둘째의 진상짓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지만 점점 단호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에 따라 아이 역시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한다. 그렇게 나는 육아에 도를 트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하여간 둘째 역시 태어나 사계절을 별 탈 없이 잘 보내 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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