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아빠를 좋아해

자식들의 생존 전략

첫째는 날 때부터 살짝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게 요구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첫째는 음식도 자기가 딱 만족할 만큼만 먹고, 결코 과식하는 법이 없다. 타고난 식탐이 적은 것도 있지만, 둘째를 낳고 나선 그런 이유가 딱히 욕심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첫째는 세상에 나왔을 때 자신의 경쟁자(다른 형제)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둘째는 확실히 엄마에게 더 집착하고, 어딜 가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이게 어쩌면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됐다. 그러니까 둘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보다 좀 더 강한 경쟁자(손위 형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주변 환경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성향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는 독립심이 강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 첫째가 늘 애타게 찾는 대상이 있으니 그건 아빠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엔 계속해서 “빠빠”를 부른다. 어쩌다 아빠가 회식이라도 하고 들어오는 날에는 현관 쪽을 서성이며 아빠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빠가 오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아빠에게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하여간 첫째의 아빠 사랑은 정말 유별나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아직 둘째가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첫째는 반드시 엄마 품 안에서만 자는 버릇이 있었다. 모유 수유를 꽤 하기도 했고, 원체 잘 안 먹어 가벼운 아가였기 때문에 엄마가 많이 안아주기도 했다. 그래서 신나게 놀다가도 잘 때는 늘 엄마 품 안에서 자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배가 더 불러 첫째를 안고 자기가 불편해지는 시점이 오자 남편에게 그 부담을 지우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빠 품에서 잘 자지 않으려 했던 첫째도 점점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둘째가 세상에 나오게 되자 이젠 완벽하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아빠에게 붙어버린 것이다. 나름 첫째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엄마가 나를 이제 품어줄 수 없다면 아빠를 내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남편 역시 첫째를 많이 케어하고 자주 스킨십을 하다 보니 첫째를 몹시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해피 엔딩이랄까.

이제 둘째가 어느 정도 커서 첫째와 체급이 비슷해지니(둘째는 우량아라 첫째와 체중이 엇비슷하다) 비로소 첫째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첫째가 늘 아빠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빠만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결핍되는 애정을 아빠에게서 채우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첫째가 정말 짠하다. 그리고 그런 첫째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아이가 둘이어서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이 바로 한 아이에게 모든 사랑을 몰빵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첫째에게도, 그리고 둘째에게도 어쨌거나 조금은 부족한 사랑을 주게 된다. 특히 첫째의 경우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받았던 엄마의 애정이 작아짐을 느끼게 되니 더욱 서운함이 클 것 같다. (그나마 첫째는 영리하게도 아빠를 잘 매수하긴 했지만.) 일찍이 엄마의 품을 빼앗긴 첫째에게 여러 모로 미안한 마음이다.

다음 주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면 첫째는 할머니집에 가게 된다. 첫째는 또 유난히 조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나름 귀한 장손이라서…) 육아의 고충은 좀 덜어지겠지만, 엄마 아빠의 품을 벗어나게 되니 좀 그립지는 않을까 지레 걱정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둘째가 태어나고 한 달을 넘게 할머니집에서 잘 있다 온 첫째이기도 하다. 어린이집도 얼마나 빨리 적응했는지! (그러고 보면 어딜 가나 적응력은 좋은 편~)

의젓한 첫째가 참 고마우면서도 늘 한편으론 짠하다. 동생으로 인해 빨리 철들어야 하는 아가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요즘은 가끔 첫째를 안고 자는 경우도 있다. 일 년 사이에 부쩍 커버린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첫째가 아빠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꼬셔서 늘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