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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ul 12. 2023

초복에 월남쌈

냉털의 완벽한 해결 방법

살림을 못하는 엄마는 여름이 두렵다. 냉장고에 야채 과일, 각종 반찬들이 썩어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ㅜ (엄마, 시어머님 죄송해요. 또 이렇게 버려요.) 최근엔 치아가 안 좋아 차가운 음식을 잘 못 먹다 보니 냉장고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늘 먹는 거에 진심은 우리 부부는 올해에도 복날 뭐 먹을지를 고민했다. 육식파인 남편은 닭이라도 먹고 싶어 했지만(그러니까 치킨), 이번주 건강검진도 있고 냉장고 정리도 좀 하고 싶은 마음, 거기다 나의 추억을 음미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월남쌈을 먹기로 했다.


월남쌈은 사실 쉬운 음식이 아니다. 재료 손질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니까. 아마 베트남에서도 매일매일 먹는 음식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여러 모로 건강식이고, 또 냉털(냉장고 털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나처럼 요똥인 엄마도 대충 투박하게 칼질 좀 몇 번 하면 ‘두둥’하고 완성된다. (라이스페이퍼 싸 먹는 건 각자의 몫이니 것도 얼마나 편해~!)


그렇게 우리의 초복 만찬은 건강하고 경제적인 음식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이 싸 먹어야 하지만 콜드 푸드라 나름 안전하다. 하여간 재료 손질이 번거로운 거 빼고 이래저래 장점이 많은 음식이다. (밖에서 사 먹을 뺀 저렴하지 않은데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또 얼마나 저렴한지~! 게다가 맛있기도 해.)


최근 살이 좀 빠지면서 둘째 출산하기 전의 체중 이하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니 육아하느라 많이 못 챙겨 먹기도 했지만 첫째 따라 땡볕인 밖에서 유모차 끌고 돌아다니고 둘째 매 끼니마다 밥 맥이는 데 신경 쓰다 보니 절로 다이어트가 된 것 같다. 거기다 이렇게 가벼운 음식까지 지향하다 보니 일석삼조~!


음식을 잘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배달음식이나 외식은 생각보다 잘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용기들이 싫고, 또 남편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해서. 그리고 아직은 아이들이 바깥음식을 먹을 만큼 크진 않아서. 최대한 (맛은 없어도) 엄마 혹은 아내의 노력이 깃든 음식을 주자는 게 내 신조긴 한데. (그러기엔 노력이 늘 부족하지만…) 하여간 어제도 남편에게 푸성귀들을 잔뜩 맥여서 나름 만족~!


사실 월남쌈은 나에게 지난날의 즐거운 추억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대학교 때 같이 자취하던 사촌언니가 그렇게 가끔 월남쌈을 만들어 줬다. 손이 많이 가다 보니 함께 재료 손질을 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둘이 또 얼마나 하하호호 수다를 떨었겠는가. 그때의 월남쌈은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아마도 20대 아가씨들이었으니까,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까, 그러면서 오랜 시간 수다를 떨게 되니가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월남쌈은 20대 아가씨의 즐거운 수다스러움이 가득한 음식이다.


남편에게도 그런 떠들썩한 유쾌함이 전달됐을까? 육식파인 남편에겐 어딘지 초복 음식으론 서운했을 수도…! (그래도 당신의 혈관 건강을 위하여~!) 중복 땐 좀 더 맛있는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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