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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Jan 06. 2022

부엌을 청소하면서

며칠 전부터 꼭 해야겠다 생각하고 미루고 또 미뤄온 부엌 청소를 했다. 청소는 사실 내가 정말 하기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인데, 청소하다 보면 자괴감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난 왜 이렇게 깔끔하지 못하지? 왜 아직도 이렇게 살림을 못하지? 왜 이렇게 게으르지?’ 등등 나의 부족함에 대해 여실히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청소를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의 결벽성 내지는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면들이 좀 있었다. 흐트러진 것을 싫어했고, 질서정연한 것에 집착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형제들이 많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 성향들을 조금씩 외면하고 감추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완벽주의는 내면 어딘가에 늘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청소를 하게 되면 조그마한 티끌도 지나치기 힘들다. 대충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청소가 엄청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시작이 자꾸 미뤄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매일같이 청소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나는 역시나 게으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청소를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습관이 들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재미 없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나만의 살림을 꾸리게 되면 나도 야무지게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하는 일에 살림이 큰 비중이 아니다 보니 결혼해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이렇게 주부로서는 빵점인 나 자신이 가끔 한심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선 그간의 내가 했던 공부들이 다 부질없는 일처럼 여겨지도 했다. 차라리 신부수업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었어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지만, 실제로 아이를 기르다 보면 이 생각을 뼈져리게 하게 된다. 살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 보니,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유튜브를 통해 살림을 배우게 된다. 살림 유튜버들은 어쩜 그렇게 야무지고 깔끔하게 살림을 하는지, 그들의 그런 능력이 너무 부럽고 나 자신이 못나 보인다.


시어머니께서는 종종 공부 잘한 아가씨가 지금은 하나도 예쁘지가 않다고, 그저 집안일 잘 도와주고 상냥한 딸이었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처음엔 그 말이 잘 이해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나도 좀 덜 공부해서 에고가 강하지 않았다면(내가 똑똑하고 잘났다는 생각을 덜 했다면) 살림도 더 잘하지 않았을까. 물론 둘 다 잘하면 좋을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나는 나의 타고난 결벽성이나 완벽주의를 공부쪽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물론 그 공부도 지금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문제이긴 하다. 그 성향을 살림쪽으로 발현시키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게 지금까지는 잘하려다가 제풀에 제가 지친 꼴이 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살림은 누가 잘하라고 옆에서 다그치거나 닦달하지 않았기에 더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이런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반성한다. 앞으로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은 내게 부족한 나 자신을 일깨우면서 자괴감을 주곤 하겠지만, 그래도 점점 경험이 쌓이면 좀 나아지겠지 한다.


아들,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너에 대한 무궁무진한 사랑도 엄마의 나쁜 습벽을 하루에 고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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