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사 Oct 06. 2023

넌 어디서 왔니?

둘째 유전자 기원설

둘째의 비글미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 문장은 오류다. 아직 절정이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걷기 시작하자 더 할 줄 아는 말짓거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다칠 때도 있고, 뭔가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엄마에게 떼를 쓸 때도 있다. 거기다 첫째의 개구짐이 더하여지면 정말 멘붕 오브 멘붕이다.


둘째의 진상 유전자는 어디서 왔는가. 시어머니와 열심히 토론한 끝에 그가 남편의 할머니 쪽을 많이 닮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남편이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악성종양으로 50대에 생을 마감하신, 인물 훤하신 그분을 말이다. 그리고 시아버지에 따르면 그녀의 막내아들인 넷째 작은 아버지 역시 닮았다 한다. 그 작은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가실 때에는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결혼만 세 번을 하시다 젊은 나이에 비명 횡사하신 분이다.


그들의 짧은 생애가 참으로 안타깝다…


자식이 어떤 친인척의 외모가 닮았다 해서 그들의 유전자까지 닮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둘째가 진저리를 치며 칭얼댈 때마다 ‘저 녀석 장수는 못하겠군.’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텐션이 좀 강하다 보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며, 그런 성향이 심혈관 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물론 의학이 점점 발달하여 그의 수명을 좀 더 늘려줄 수는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둘째가 첫째보다 인물이 좋은 건 자명하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내가 엄마이긴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예쁜 아가가 태어났을꼬! ’하면서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첫째가 순식간에 오징어가 되는 듯한 마법! (물론 우리 첫째도 뽀얗고 얼굴이 주먹만 해서 그 나름의 매력이 있긴 하다. 어디까지나 엄마 뇌피셜이지만!)


그러다 그가 점점 첫째의 체중과 비슷해지자 둘째가 덜 귀여워졌다. 역시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힘이란 타고나는 것인지 갓난 애기 무렵부터 괴력을 선보였던 둘째는 형아의 체중과 맞먹게 되자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가끔 엄마를 멍들게 하기도 했다. (둘째는 엄마 품에 슬며시 안기는 법이 없다. 제 몸을 던져 머리로 엄마 가슴을 내려친다. 그러다 가끔 턱이나 코가 맞기도 한다.)


둘째가 남자답다고 나름 예뻐하던 친정 아빠도 이번 추석 명절엔 “쟤는 너무 무거워.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째의 야들야들함이 어느샌가 친정 가족들에게 주목을 받고 선호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음 한켠에서 어느 순간 첫째의 부드러운 살가움에 더 마음이 가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 맘은 다 똑같은가 봄!)


앞으로 이 둘째 녀석은 어쩌면 외부에서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선 안되지. 그럼 내가 더 예뻐해 줘야겠구나. ’ 엄마 맘이 그렇다. 못난 자식도 다 같이 품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나온 것은 예쁜 놈은 어딜 가든지 예쁨을 받아 떡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는.


결론적으로 나는 둘째를 더욱 사랑해 보기로 결심했다. 한참 동안은 내 맘과 행동이 다른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져 혼란스럽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둘째가 ’왜 사람들은 나보다 형아를 예뻐할까? ‘하면서 괴로움에 빠질 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제일 예뻐하지! ‘라는 생각으로 자긍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사랑이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심혈관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쳐 증조할머니, 그리고 작은할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란다.


요즘 근력운동을 특히나 열심히 하고 있다. 둘째를 상대하려면 튼튼한 근육이 필수이기 때문에…! ‘둘째는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에게 그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기 보단 굉장한 노오오오오오력(플러스 근력)이 요구된다는 점이 조금 차별화된다고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염세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