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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Dec 23. 2023

엄마, 고마워요

첫째가 존댓말을 하기 시작하다

첫째가 세돌을 지나면서 부쩍 의젓한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놀라운 점은 갑자기 나에게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이 느린 편이었던 아이가 말을 좀 하자마자 존댓말을 한다는 것이 나는 실로 “오잉~?!“인 것.


나는 부모님께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 아빠와 대화를 할 때는 반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 딱히 존대를 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존댓말을 가르친 적이 없다. 따라서 첫째는 아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 배운 것이리라. 그렇지만 공과 사는 다른 것이고, 집에 오면 편하게 말을 해도 좋으련만…! (물론 남편의 그의 부모님에게 존대를 하긴 한다.)


기특하긴 하지만, ‘아직은 엄마와 조금 더 평등하고 편한 사이가 되어도 괜찮은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지금 이 시기는 어떤 어리광도 받아줄 수 있는 때 아닌가!


그런데 이런저런 첫째의 행동으로 추론해 보건대, 이 아이는 천성이 “천사” 같은 애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 좀 착한 애라는 것. 원래 좀 사랑스러운 애라는 것. 내 새끼라 더 그래 보이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확실히 둘째와는 천성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여우” 같기도 하고.


어느 날 내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니 첫째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나의 안경과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보통 내가 집에 있을 때 항상 곁에 두는 물건이었는데, 첫째가 그걸 기억하고 챙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 솔직히 너무 감동했다. 이렇게 엄마를 배려해 주는 아이가 되다니…!


그래서 요즘 나는 남편에게 첫째가 다 컸다는 말을 한다. 솔직히 그게 감동적이면서도 아쉽다. 아기 시절이 이미 지나갔다는 말이니까. 점점 저렇게 커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의 손길이 전혀 필요치 않은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첫째의 그간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너무 아깝고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아가인 아이를 어떻게 유치원을 보내나 했는데, 어느새 스스로 준비를 다 마친 것이다. ‘아이의 성장은 자연 본연적인 것이구나. ’ 더불어 나도 그만큼 부모로서의 경력이 생겼을 터. 세월이 무상하다.


요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직은 내 품에 쏘옥 들어오는 체구이고, 어딜 가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아직은 덜 큰 상태의 아이들, 부모로서 나와 남편도 아직은 많이 늙지는 않은 딱 지금의 순간. 너무 좋은데~


그런데 갑자기 첫째가 “엄마, 고마워요. ”라는, 철든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갑자기 고맙다니…? 이렇게 갑자기 첫째의 낯선 성장을 맞닥뜨린다. 아니, 이렇게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너에게 더 고마워. ㅜ


그렇게 내년이면 유치원에 들어갈 첫째가 갑자기 너무 커버린 것 같아 서글프고, 또 엄마보다 엄마를 더 사랑해 주는 것 같아 고맙다. 엄마의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첫째의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건 엄마에게 너무 당연한 거라고 이해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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