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넘으면 한 해 한 해 다르다고 한다.
올해 여든셋, 정님 씨 걸음은 더 느려졌고 점점 자기 주장 강한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한번은 정님 씨와의 전화 대화 내용을 한번 복기해 봤다.
엄마, 대전은 비가 오네요.
어제부터 계속 비가 많이 내려요.
- 큰 딸
거긴 그렇구나.
여기는 구름만 끼고 비는 안 온다.
어제도 비가 조금 내리고 금방 개서 다닐만했다.
오늘은 구름만 껴서 아주 선선하고 좋구나. 거기도 비 안 오지?
- 정님 씨
아니. 여기는 어제부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요.
아침부터 온통 누렇더니 앞이 안 보이게 비가 쏟아져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 큰 딸
아유, 여기는 비가 하나도 안 오고 구름만 조금 껴서 밖에 돌아다니기 아주 좋단다.
어제 새로 사서 수선한 곤색 기다란 원피스를 입고 나가야겠다.
날씨도 선선하고 약간 쌀쌀해서 호수공원 돌기에도 좋겠구나.
너도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걸어라.
걸을 때도 천천히 걷지 말고 빨리 걸어서 살 좀 빼라.
-정님 씨
아니 엄마, 여기 비 온다니까요.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못 나간다니까.
어제부터 비가 퍼붓고 있다구요.
우산 쓰고 나가도 다 젖을 판이라 못 나가요.
-큰 딸
으응, 거기는 그렇게 비가 많이 오냐.
여기는 비 안 오는데.
여기는 구름만 좀 끼고 해는 없는데 비가 안 와서 걷기 딱 좋아.
이번에 새로 산 곤색 원피스가 말이야.
허리가 약간 꽉 끼는데 내가 허리 솔기를 다 풀어서 4센티가량 넓혔더니 넉넉하게 딱 맞아.
입어보니까 아주 마음에 들어.
중국산인데 어깨 쪽에 조그맣게 꽃이 수놓아져 있는데 고상한 게 아주 이뻐.
오늘은 노래 카페 갈 때 요거 입고 빨간 샌들 신고 나가야겠다.
너도 틈만 나면 밖에 나가서 운동 좀 해라.
많이 먹지 말고 부지런히 걸어서 살 좀 더 빼.
-정님 씨
아, 네.......
-큰 딸
어쨌거나 정님 씨는 새 곤색 원피스에 빨간 샌들 신고 노래 카페 갈 생각에 신이 난 거였다.
더불어 큰 딸의 비만을 늘 염려하시는 바
오늘도 운동해라. 살 빼라. 많이 먹지 말라는 첨언을 잊지 않으신 거고.
늘 반복되는 이런 대화에 큰 딸은 재밌게 다녀오시라며 얼른 대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