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상냥한 성격도 아니고 조곤조곤하지도 않다.
어느 정도 부모님 성격을 닮았는데 특히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성격은 엄마 정님 씨를 닮았다고 자부한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친정 식구들은 대체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성격들이 아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그나마 전화를 자주 하게 됐지 그전에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러고 살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일이다.
한 번은 정말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다.
잘 살고 있냐며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은 끝에 불현듯 나의 엄마 정님 씨가 말했다.
얘,
나는 너 결혼하고 얼마 못 갈 줄 알았다.
몇 년 살다 못 살겠다고 짐 싸서 내려올 줄 알았어.
근데 이렇게 십 년이 넘도록 잘 살고 있는 걸 보니 내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얘.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결혼한 딸이 금방 이혼하고 돌아올 줄 알았다는 얘기를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폭탄 던지듯 말할 수가 있나 싶었다.
당연 나는 반발했다.
내가 왜?
내가 어때서?
얘, 이제야 말하는데,
내 딸이지만 너 성격이 참 안 좋잖니.
나는 네 성격에 걸핏하면 아범이랑 싸우고 못 살겠다 그럴 줄 알았지.
그 성격을 다 죽이고 이렇게 오래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참 대견하다, 얘.
내 딸이지만 고맙고 대견하다고 생각해.
잘하고 있어.
하~
이것은 칭찬인가 욕인가.
무슨 엄마가 이래요? 내 성격이 어때서?
이 성격 다 엄마 보고 저절로 따라 배운 거거든요.
결혼 생활 15년 만에 정님 씨의 진심을 들은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내가 성격이 나쁘다는 엄마 진심에 화를 내야 할지
못 살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꾹 참고 잘 살아줘서 고맙고 대견하다는 칭찬에 고마워해야 할지...
그걸 또 왜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하시냐 말이다.
결국 나는 고맙고 대견하다는 칭찬만 수용하기로 했다.
엄마처럼 나도 듣고 싶은 말만 골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도 또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연세 80이 넘은 엄마는 그때의 진심을 기억하고나 있을런지.
15년 만에 큰 딸에게 전한 정님 씨의 진심을 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