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정님 씨는 내가 친정 갈 때마다 한두 가지 옷을 나눠준다.
새 옷일 때도 헌 옷일 때도 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랬다.
처음 옷을 받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편하게 입을 옷이 하나 더 생겨 좋아했다.
여자들에게 옷이란 늘 부족한 것이니까.
근데 하나둘 엄마가 입던 옷이 나한테 오는 일이 늘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엄마가 몇 년 전부터 입던 옷이라는 걸 알아채면서 미묘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입던 옷을 내게 주시는 걸까?'
첫째, 새 옷인 경우 대부분 본인이 입으려고 샀다가 맞지 않는 경우다.
디자인이 예뻐서 샀는데 너무 젊은 애들 취향이라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어깨가 넓거나 허리가 꽉 끼거나...
여하튼 본인 취향대로 수선해서 입을 수 없는 경우 내게 주어진다.
둘째, 마음에 드는 외투를 새로 장만한 경우 여러 해동안 입던 낡은 외투를 "얘, 이거 너 입어라." 하며 내게 하사한다.
‘이거 엄마 입던 거잖아. 잘 입으시더니 왜에?" 하면,
"응. 나 이번에 백화점 가서 새로 샀어. 이건 너 입어 봐." 하며 얼른 입어보라고 재촉한다.
얼떨결에 입어보면 잘 맞네 하며 갖고 가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또 얼떨결에 엄마 옷을 받아 들고 집에 온다.
그렇게 가져오는 옷들은 막상 입으려 보면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 낡았다.
그럼 나는 또 몇 년 동안 못내 아까워하며 가지고 있다가 결국 의류수거함에 넣게 된다.
몇 년 전 겨울엔 오리털 점퍼만 두 개를 받은 일이 있었다.
새 점퍼를 샀다며 입던 점퍼를 내게 하사했는데 그 해 겨울 세일 때 두 벌을 새로 샀다면서 한 벌을 더 주신 거다.
디자인도 비슷한데 색까지 비슷한 점퍼가 두 개나 생겼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내가 입고 갔던 거위털 점퍼를 엄마한테 드렸다.
오리털보다 가볍고 색도 브라운 계통이라 엄마 취향과도 맞고, 무엇보다 입었을 때 폭 감기는 느낌이 좋아 나도 몇 년간 애용하던 유일한 겨울 점퍼였다.
입어 보신 엄마도 포근하게 감긴다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
문제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이 서운해하는 거였다.
엄마랑 동생이 함께 백화점에 가서 골라 세일하는 점퍼 두 개를 엄마가 샀는데 그중 하나를 내게 준 것이었다.
그전에 입던 점퍼도 받았으니 나는 비슷한 점퍼가 두 개나 생긴 거였고.
정작 함께 쇼핑가서 골라준 동생은 얻어입은 것 하나 없으니 서운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새 점퍼 하나를 동생에게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내겐 취향이 맞지 않는 점퍼 한 개만 남았다.
그런데 시골집 갔더니 시어머니도 내게 가을 외투를 하나 주셨다.
몇 년 전 삼촌네가 사 왔는데 네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다며 다짜고짜 입어보라더니 가지고 가라 신다.
"아니에요. 어머니 입으셔요.' 말해도 당신은 입을 일 없다며 너나 입어라 떠밀리듯 가져오게 됐다.
집에 와서 천천히 거울 앞에서 살펴보니 이것도 내 취향이 아니어서 곤란해졌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들도 나름의 취향이 있는 거다.
선물 받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 주기는 아깝고 버리자니 그건 더 아깝고,
그래서 딸이나 며느리에게 입으라고 주시는 듯한데
음… 내게도 취향이 있고 어울리는 옷이 따로 있다.
어머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나한테 어울릴 일은 더욱 없다.
거절하지 못하고 떠밀리듯 가져와버리지만 결국 내게도 짐이 되어버리는 옷들,
그래도 이것도 사랑이라고 선뜻 버리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