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바우어, 고함쟁이 엄마, 2005, 비룡소
우리 엄마는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다.
아,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엄마가 마냥 무섭고 신경질적인 사람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여하고 싶다. 엄마는 요리를 무척 잘하시고, 사람들에게 상냥한 편이며, 유머도 제법 갖춘 사람이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며, 어르신들께도 예의와 공경을 다하신다.
그리고 엄마는 뜬금없이 소리를 질렀다. 흐흐흐. 이제 이 이야기를 편히 하련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고함이란, 자식 입장에선 <뜬금없이>이며,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참을 만큼 참았던> 고함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차이를 조금은 알겠다.
그러니까 엄마들은 소리 지를 때 -그 순간 바로 지르는 엄마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참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말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하지다.
혹 대단한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그건 엄마들은 대체적으로 바쁘다는 사실이다. 바쁘기 때문에 마음이 늘 급하다. 그런데 자식이 비협조적이거나 말귀를 못 말아먹거나 (어른들 기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으면 확 열받는 거다.
근데 그래도 참아야 어른 아니겠는가.
나는 삼 하나 사 하나 때문에 엄마를 고함쟁이 엄마라고 기억하게 되었다. 흐흐흐. 이렇게 말하니 속 시원하다. 우리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를 다급함으로 나를 찾은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전후사정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다만 어린 나에게 얼른 무선전화기를 들고 와 엄마가 부르는 숫자를 누르라하였다.
오삼삼에 삼 하나 사 하나.
전화번호였다. 533-삼 하나랑 사 하나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 전화번호는 533-34XX. 여기까지였다. 뒷 숫자가 네 개여야 한다는 것쯤은 알던 나이였는데 엄마가 삼 하나 사 하나만 말하니까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삼이랑 사랑 그다음?
엄마는 삼 하나 사 하나,라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엄마를 돕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채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야무지게 다시 물었다.
응, 삼 하나랑 사 하나랑 그다음에 뭐야?
엄마는 예열도 없이 폭죽을 쏘아댔다. 나의 양귀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쾅쾅쾅 울렸다.
아무 탈 없이 엄마를 돕고 있는 줄 알았던 지금 이 순간이 순식간에 다른 그림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나도 모르게 엄마를 열받게 하고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삼 하나, 사 하나가 대체 뭐냔 말이다. 삼 하나, 사 하나, 삼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 숫자.
엄마는 왜 내가 한 번에 못 알아들었을 때 3141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초등학생이 이걸 모르는 게 그토록 욕먹을 일이었을까. 나는 두고두고, 정말이지 두고두고 뼛속 깊이 이 일을 새겨놨다.
그래서 아이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쓴다.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재빨리 다른 표현으로 진술을 바꿔야 한다. 상대가 아이인지 노인인지 외국인인지에 따라 표현은 달라져야 한다.
"건물을 끼고 가라"는 말이 어려우면 건물 끝에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해야 한다.
"딸기잼이 바닥났다"라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딸기잼을 다 먹었다고 말해야 한다.
상대의 수준에 맞게 말하는 건 말하기의 에티켓이고 기본 매너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해놓고는 상대가 다 알아듣기를 원할 때가 있다.
사실 나도 이런 실수를 자주 한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탓에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나에게 비유는 대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양념이고 내 마음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잖아~ 그런 상황이었지 뭐" 라면서 속담을 사용하거나 "왜 꼭 다들 빨간 옷 입고 왔는데 나만 전달 못 받아서 파란 옷 입고 온 느낌이었어. “ 같은 비유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대체적으로 여자친구들하고 대화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특히나 내 주변 친구들의 9할이 문학전공자이거나 문과생이다. 문학가들 이름이나 문학 속 대사를 대화에 가져오는 건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이공계생, 그러니까 철저한 이과생으로 "A는 B다" 같은 명제에 밝다. 심부름을 시키면 입력과 출력이란 개념을 말하며 내게 다 정확한 코딩 언어를 쓰면 좋겠다고 말한다. 컴퓨터 속에 사는 사람처럼 "1과 0으로 이루어진" 단순명쾌를 지향한다. 그러니 0.1 같은 감정은 남편에게 놀랄 노자 그 자체다.
싫으면 싫은 거지, 싫은데 좋아?
가기 싫은 데 가고도 싶어?
이미 끝난 일인데 그걸 아직도 생각해?
남편은 종종 나를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지지만, 성정이 착한 탓에 로봇처럼 "그렇구나"라고 대답해 줄 줄 안다.
그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을 만나서 내 언어는 수없이 많은 연금술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이 짧다면 우리는 <궁합>이니 <코드> 같은 말을 하며 서로에게 흠뻑 젖어들고는 한다. 척하면 척이니, 얘기할 맛이 얼마나 나겠는가.
그러고 보면 낯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사용한 언어의 두께가 한없이 얄팍했을까 봐, 아는 척만 했지 그 안에 사랑은 없었을까 봐, 오소소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껏 내가 고수한 이 표현이 사실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지금껏 내가 겸양의 표현으로 쓴 이 말들이 사실은 얼마나 치사했는지, 지금껏 내가 아껴온 침묵이 사실은 얼마나 차가웠는지 등을 우리는(나는) 깨달아야겠지.
유타 바우어의 <고함쟁이 엄마>에서 고함쟁이 엄마는 고함 때문에 온몸이 흩어져 버린 자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가야, 미안해."
그리고는 소리 지른 죄(?)를 스스로 수습한다. 제법 용기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 실수 후의 태도가 더 중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삼 하나 사 하나 다음에 사과를 받지 못했다. 사과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차분히 삼 하나 사 하나는 삼일사일이란다 잘 몰랐지,라고 알려주기라도 했더라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겠지. 너덜너덜한 내 몸 일부에는 삼 하나 사 하나가 선명하다. 언젠가 엄마가 내 글을 보게 된다면, 엄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엄마는 '이래서' 힘든 거다. 흐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