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수동 정안맨숀

1_정안맨숀 반지하

by 금옥

1987년 겨울 무렵 가족은 광주를 떠났다.

광주의 모든 이야기를 뒤로 하고 젊은 부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품에 안긴 아기와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3살 금옥의 손을 잡고 기차 안에서 부부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에 들떴을 것이다.


트럭에 실린 이삿짐은 벌써 도착해서 지하로 밑으로 인부들 손에 이끌려 내려갔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댓돌 위에서 젊은 부부는 어떤 미래를 생각했을까?

반지하 단칸방 초라한 집이 혹여 실망스럽지는 않았을까? 300백만 원의 전셋집은 가난한 부부가 치를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낮의 햇빛 한 줄기도 어두운 장막이 내린 지하에는 내려앉지 못했다. 형광등의 주홍 불빛만이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환하게 밝힐 뿐이었다.

가파른 계단은 4살의 아이에겐 위험천만이라 반들반들한 나무 손잡이를 두 손 꼭 잡고 내려가야 했다.


간혹 수명이 다해버린 형광등 밑에 서서 금옥은 미지의 던전에 내려가는 용감한 용사 마냥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겁쟁이 용사는 깜깜한 어둠에 휩싸인 던전 앞에서 두려움에 발만 동동 거리다 용감하게 소리 높여 외쳤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소리 높여 외치고 나면 지하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찾아 계단 위로 단번에 올라온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내려가는 지하 계단은 더 이상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었다. 엄마의 따뜻한 품처럼 나를 가득 품어주는 보금자리였다.


지하로 내려와 마지막 계단에 서면 정면에 세 집, 왼쪽 한 집과 오른쪽에 두 집 모두 여섯 개의 집들이 복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반지하의 6 가구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았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는데, 누가 사는지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복도에 나와 있는 세탁기들이 쿵쾅대며 돌아갈 때면 저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반지하에는 정화조가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는데, 계단 뒤 왼쪽으로 정사각형의 구덩이 안으로 커다랗고 시꺼먼 검은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우리 집은 바로 웅덩이 왼편 집이라 문을 열면 바로 곁에서 검은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웅덩이는 따로 막아 놓질 않아 가까이 다가가 구경할 수다 있었다. 가까이 바짝 붙어 발끝 아래로 검은 물이 부글부글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상 3층에 사는 사람들의 폐수와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폐수가 모여 내가 사는 집 바로 옆 구덩이에 모두 모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 검은 구덩이 앞에 서서 방울방울 거품 터지는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고는 했다.

불규칙적으로 터지는 검은 방울들은 나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계속 보고 있자면 점차 멍해지고, 아무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그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하게도 시궁창 냄새는 지독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반 지하 특유의 서늘함과 축축함 젖은 먼지 같은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어린 나는 정안맨숀 반지하에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