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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정안맨숀

2_정안맨숀 반지하

by 금옥

반 지하 사람들의 집 구조는 모두 비슷했다.

2평 정도의 작은 부엌에서 세면을 함께 해야 했고 안쪽 깊숙이 연탄불을 놓는 곳이 있었다. 세탁기는 집안에 둘 데가 없어 우리도 다른 집처럼 현관문 옆 복도 한편에 세탁기를 두었다. 세탁을 하고 나면 집 앞이 세탁한 물로 자작해졌다. 그리고 세탁이 끝날 때 즈음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검은 웅덩이로 구정 물을 밀어 넣었다.


주말의 반 지하의 모든 집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침부터 세탁을 했다. 집집마다 세제 향기가 하루 종일 지하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바닥은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었다. 나와 동생은 밖으로 나와 첨벙거리며 지하 공간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세제물의 미끄러운 거품을 발에 가득 묻히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검은 물 구덩이에 밀어 넣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반 지하의 수많은 단점 중에서도 사소한 재미를 나와 동생은 잘도 찾았다.


현관 철문을 들어서면 부엌 겸 욕실을 지나 방문을 열면 정사각형의 집 안이 보인다.

방에는 자개장과 앉은뱅이책상, 4단짜리 서랍장과 금성 텔레비전, 산요 오디오 세트 그리고 작은 냉장고와 쌀통이 우리 가족을 벽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누워 형광등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벽에 붙어 있던 세간살이들이 나에게 쏟아질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머리가 어지럽고 아찔한 느낌이 들어 그대로 잠이 들고는 했다.

설마 연탄가스에 취한 건 아니었겠지. 집에는 항상 동치미가 있었다.


반지하의 집은 어린 나에게 안식과 함께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곤 했는데, 실제로도 그 감각이 몸으로 느껴지고는 했다. 한 번씩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 때면 슬리퍼를 신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장롱 문을 열어젖히고 얼굴을 이불 사이에 밀어 넣어 숨을 쉬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고 나면 숨이 다시 쉬어지며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두근대는 가슴이라던가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반지하가 나에게 주는 심리적인 어떤 영향이 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화장실은 집 밖으로 나가 정원 옆 4칸짜리 공중 화장실로 가야 했다. 말이 4칸이지 맨 뒷 칸은 청소용품이나 기타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 3칸짜리 공중 화장실이다. 저녁 화장실에 갈 때면 무서워서 엄마 손을 잡고 나갔다.


"엄마 거기 있지? 엄마 있지?"


"응. 있어. 걱정 마. 엄마 기다릴게."


내 머릿속에서는 저 대답하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에 무서웠다.

속옷과 바지를 다 올리지도 않은 채 헐레벌떡 나와 버렸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정원 한 바퀴를 돌며 두려웠던 마음을 씻어냈다. 고개를 들어 맨숀사이로 보이는 하늘 위에서 북두칠성을 찾는다거나 하늘의 별을 새는 것이 그 저녁 산책의 자그만 행복이었다.


그래도 공중 화장실은 정말 너무 한 거지. 겨울 화장실은 엉덩이가 꽁꽁 얼고 여름 화장실은 냄새가 고약하니 어린 여자 아이에게 너무 큰 곤욕이었다. 나는 6년 동안 정안맨숀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정안맨숀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놀이터는 없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 나무와 꽃을 잔뜩 심어버렸다. 난 놀이터보다 오히려 정원이 좋았다. 작은 정원에는 여러 가지 꽃들과 관목들이 있었다. 버드나무, 철쭉꽃, 죽단화, 장미, 맨드라미, 접시꽃, 칸나, 진달래 등등 여러 가지 꽃들이 질서 없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원 한편에는 커다란 목련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목련은 첫 봄의 시작을 알리며 털북숭이 꽃봉오리들을 앞다퉈 틔워 말간 얼굴을 보였고,

언제 피었냐는 듯 금세 누렇게 떠서 말릴 새도 없이 땅으로 앞 다퉈 처박혔다.

회색 빛의 거친 시멘트 바닥에 너나 할 것 없이 흩어져 나 뒹구는 목련의 최후는 썩 보기 좋지 않았다.

나는 누렇게 뜬 목련 꽃들을 신발로 지러 밟곤 했다.

신발 밑창에 형태 없이 진득하게 달라붙은 꽃잎을 시멘트 바닥에 벅벅 문지르는 것은 일종의 놀이이자 불쾌함의 발현이었다.

하늘 위에서 고아 했던 목련 꽃들은 꽃송이 채로 처량하게 땅에 떨어져 누렇게 변해버렸다.

어린 나이에도 그 간극이 그토록 불편했나 보다.

괜한 심술을 떨어진 목련에 풀어버렸다.


목련의 흔적도 사라져 버리고 벚꽃도 지고 난 뒤 피어나는 귀여운 노란 죽단화가 하얀 목련보다 좋았다.

어린 병아리의 몸뚱이 같은 노란 꽃잎들이 사랑스러웠다. 동그랗고 풍성한 노란 꽃송이들의 향연은 마치 커다란 꽃다발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작은 꽃송이는 이별을 할 때에도 다른 줄기에서 더 많은 꽃송이들을 내밀며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목련과 죽단화 두 꽃의 끝은 이렇게나 다르게 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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