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패배자
하루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는 길
비록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의 목적지는 항상 같다.
비루하고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도착한 곳
땀 냄새가 풍기는 주짓수 체육관이다.
하지만 같은 노력에도
모든 사람의 성장 속도는 조금씩 다른가보다.
운동이란 것과 거리가 멀었고
또래보다 한참 작고 약했던 나는
사소한 움직임 하나를 익히는 것도 어렵고
주변 걱정을 살 정도로 다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물리적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적인 성장은 모르겠지만
양적인 경험만은 계속 쌓여갔다.
그리고 오늘은 대회날
먼저 도착해 대기하고 있다.
사실 주짓수라는 것도
대회라는 것도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고
어쩌다가 참여한 첫 대회에
얼떨결에 우승해 버린 기억
그것 덕분에 피곤해도
아픈 곳이 늘어도
지금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마초 같은 사람들이 넘처나는 대회장
첫 대회의 아름다운 기억과
어떻게든 버텨왔던 시간에도
이놈의 긴장감과 불안은
적응도 안되고 감출 수도 없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대기 시간
내 이름이 불렸다.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상대를 확인한다.
그리고 시간은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결과는 패배
전혀 아쉬움이 남지 않는 완벽한 패배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신경 쓰이던
손과 발 마디의 염증들과
금이 가있는 갈비벼가
왠지 더 지끈거린다.
나를 담은 영상
난 부족했고 상대는 뛰어났다.
그래서 조금은 처량했다.
그런데 왠지 나쁘진 않다.
오히려 기분은 좋다.
먼 곳까지 이유 없이 와준 사람들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
함께 긴장하며 지지하던 사람들
이제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를 응원하던 이 사람들
이들이 항상 강해 보였다.
그리고 똑같이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 왔다.
그 와중에 긴장감과 부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변명거리로 삼지 않았다.
그렇게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고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하던 대로 해"
이번에도 듣게 된 말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히 준비되고
완전한 조건에서
임할 수 있던 적은 없었다.
평소에 해두었던 것
할 수 있는 것을 했더니
어느 날은 아쉬운 기억이 남았고
어느 날은 좋은 기억이 남았다.
그리고 다시 슬기로운 퇴근 생활을 즐기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