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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어린이 같은 어른

by 조나단

“엄마가 보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더 이상 안 되겠어요.”


꽃다운 나이 20살

그는 나와 처음 만났다.

발달장애를 가진 A는 특수학교 졸업 직후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A의 자립생활의 시작은 좋았다.

자기 관리를 잘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을 잘 정돈할 수 있다.

주변 청결을 잘 관리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A는 특수학교에 재학하던 때부터

소위 엘리트 소리를 들어왔다.

경미한 지적장애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많은 것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아이

덕분에 교내에서 A를 향한 기대는 컸고

그만큼 자신감도 넘쳤다.


A에게 주어진 작지만 독립된 집

“이제 너의 공간이야 잘할 수 있지?!”

A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A에게 자립이란

특수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어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식당을 이용하고

자기 관리는 어찌나 잘하는지 향수와 바디로션까지 직접 골라 사용한다.

친구는 많아 외로울 틈 없이 바쁘기도 하다.

여러 사회복지사와 특수학교 교사들에게

엘리트 소리를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A를 향한 우리의 고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A는 자신감보단 어리광이 늘어갔다.

“자기 전에 전등을 끄면 어두운 방

침대까지 가는 것이 무서워요”

“학교 전공과(특수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이 직업 능력 개발을 위해 참여하는 기술학교와 유사한 곳)에서 받은 알림장은 누구에게 확인받아요?”

“치킨을 먹고 싶은데 이제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해요?”


A의 독립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세탁기 작동하는 법

주변 환경을 깨끗이 관리하는 법

한 끼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

위험한 상황을 대처하는 법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A의 20년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A에게는 어리광과 투정을 받아줄 힘없는 부모님이 있었다.

A에게는 결정과 선택을 대신해 주는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A에게는 해야 할 것을 지도해 주는 특수교사가 있었다.

그러나 A에게는 이외의 관계와 경험을 만들진 못했다.


학교에서 복지관에서 엘리트 소리를 들으며

자신감이 넘쳤지만

A의 내면은 너무나 여렸고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직접 끝까지 해본 것이 없었다.


“청소하고 빨래하는 법을 아니까 이제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내방을 청소하는 건 엄마가 해주는 거예요. 안 해봤어요.”

“음… 자립한 남자는 300만원은 벌어야죠.

근데 필요한 것은 아빠에게 말하면 돼요.”

“먹고 싶은 것? 제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깨진 그릇은 그냥 둬요. 엄마가 정리해 주니까

”저 친구도 진짜 많아요.

근데 친구와 싸우면? 선생님에게 말하면 돼요.”


A에게 필요한 것? 이해했다.

그래서 A가 나와 시도했던 것?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엘리트 소리 들을 정도로 잘할 수 있는 것들

자신의 주관대로 하고 싶은 것들

스스로 해보았다. 대신 끝까지…


300만원을 벌고 싶다고 하니까…

일단 복지형 일자릴(취약계층이나 직업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공일자리, 근무 시간이 짧지만 근무 난이도와 강도가 낮고 근무 중 많은 배려를 받을 수 있다.) 신청해 참여해 봤다.

자신의 방을 취향대로 꾸며보았다.

원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허락받지 않고 직접 구매해 봤다.


물론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다. 그만큼 투정은 많아졌다.

“버스가 늦은 건데... 출근시간이 지났다고 혼났어요.”

“왜 일할 땐 맘대로 화장실이나 편의점을 못 가요?”

“옆의 동료가 귀찮게 해서 욕을 한 건데 잘못한 거예요?”

“물건의 포장지들을 정리하는 건 귀찮은데 직접해야 해요?”

“공과금을 내버리면 오늘 치킨 못 먹는데 안내면 안 돼요?”

평범한 20대 청년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투정이겠지만

A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주는 사람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나도 어른이니까 자립생활 쉬울 줄 알았는데

힘들어서 안 되겠어요.”

“이 어린이 같은 어른…”

투정만 늘어가는 A의 독립

불가능했다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이미 A를 원가정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A가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단지 우리는 그 과정 중에 A를 만났다.


“저에겐 장애가 있어서 어려운 거예요.

장애인은 이런 거 못하잖아요.

그래서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장애인이라고 안 되는 게 아니잖아…

경험이 없는 건 죄가 아니잖아…

우리도 처음이 있었잖아…


오늘도 A는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고

맘대로 할 수 없는 직장에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잘 꾸려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A를 응원한다.

그리고 언젠간 이 어린이 같은 어른이

자신의 생활을 멋지게 꾸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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