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약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영양 상태는 최악이었고 발달은 늦었다.
인큐베이터에서도 어렵게 벗어난 아이
약한 아이를 걱정하던 시골 마을의 품앗이 덕분에
집엔 진귀한 음식들이 쌓여 있었지만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며 울어 재끼던 나였다.
‘하하! 또 앞줄이네’
또래보다 한 뼘은 작았던 나
언제나 앞줄은 내 차지다.
시야가 뻥 뚫린 앞자리가 나쁘진 않다.
하지만 불편한 것 중 하나
앞줄 작은 아이는 뒷줄 큰아이의 표적이 되고는 했다.
하루는 애써 무시한다.
하루는 한껏 당하고 기가 죽는다.
하루는 눈알을 뒤집고 맞서 싸운다.
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
작은 아이의 마음속에 오기가 생겨났다.
‘당하고는 살 수 없지! 나 엄청 강해지고 싶어!’
초등학생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시금치를 좋아하는 아저씨처럼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면 된다.
학급에서 가장 작았던 나는
다짜고짜 키와 몸이 커지겠다며
먹지도 못할 우유와 음식들을 깔아 두고
목구멍에 쑤셔 넣는다.
생활비도 빠듯한 가정에서 며칠 동안 때를 써
동네 태권도 도장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매우 더웠던 어느 날
나름 매주 출석하던 교회
“저 고기 많이 먹어야 돼요!”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된 삼계탕
꼬마의 특권이자 배짱으로 한 그릇 얻어낸다.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아이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곳으로 끌려간다.
땀 냄새가 풍기는 낡은 복싱 체육관
엄청난 내공을 숨긴 듯한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숨 막히는 분위기가 왠지 나를 들뜨게 했다.
‘여기서 조금만 버티면 나도 제법 강해질 것 같아!’
땅콩같이 작은 녀석이 괜히 촐랑거리다가
사각의 링 위로 불려 가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그날부터 하나의 취미에 꽂혀버린다.
동경할 사람은 또 얼마나 많던지
쪼끄만 녀석이 열심히라며
1대 1로 비기를 전수해 주는 형들
땀에 절어 반쯤 죽어가는 숨을 내쉬면서도
눈빛 하나는 매서운 아저씨들
그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매일 의욕을 불태웠던 작은 나는
비슷한 체격의 상대를 찾기 힘들어
강제로 큰 사람과 부딪힌다.
눈앞이 번쩍번쩍 머리가 핑핑 돌아도 즐겁기만 하다.
정해진 체중에 맞춰야 할 때면 고통이 따로 없지만
이것마저도 나에겐 의미 있는 일이었다.
취미일 뿐인데 너무 과하다며
쪼그만 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덕분에 체력 하나엔 자신이 있었고
적어도 우리 동네, 우리 체육관에서는
필리핀의 국민 영웅을 빙의했다.
덕분에 난 항상 자신감이 차 있었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보다 몇 뼘은 큰 사람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았고
사사로운 일 때문에 굳이 싸우려 들지도 않았다.
성인이 된 나
땀 냄새를 풍기던 기억이 아직도 소중하다.
강한 사람? 약한 사람? 난 어떤 사람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당했던 꼬마처럼
작은 일에 웃어버리고
큰일에 주눅 들지 않는다면
강한 사람이 돼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