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을 했다. 출근은 항상 바쁜 몸으로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분주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기에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살다가 시야가 차츰 어두워지고, 어깨에 무거운 느낌이 들고, 머리에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지는 순간이 되면 퇴근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방에 핸드폰과 수첩, 다른 것들을 챙겨 넣고 의자 등받이에 걸려있는 외투를 챙겨 입는다. 그리고 혹시나 빠뜨린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책상 위를 둘러보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약 20분 거리. 회사와 집 사이에서 내가 하루라는 시간을 퇴고하는 공간이다. 멍하게 걸어갈 때도 있고, 음악이나 유튜브 방송을 들을 때도 있고, 때로는 더 걷고 싶어서 일부러 둘러 갈 때도 있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횡단보도를 세 개나 건너야 한다. 회사 앞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퇴근하는 무리에 섞여서 건너고 이윽고 작은 길 두 번째 횡단보도에서 이르러 신호를 기다린다.
매일 비슷한 시각에 회사를 나오다 보니 어쩌다가 마주치는 사람도 낯익은 경우가 있다. 오늘은 내가 서있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지나가는 노부부가 낯익다. 할아버지는 오른손에, 할머니는 왼손에 같은 등산용 스틱을 하나씩 잡고 계신다. 그리고 남은 손들은 서로 단단히 잡혀있다. 마치 발이 아니라 손이 묶인 2인 3각 같다. 할아버지의 그리 크지 않은 보폭의 한 걸음에 허리가 굽어 스틱이 없으면 금방 땅에 얼굴을 찧을듯한 할머니의 종종걸음이 힘겹게 따라가고 있다. 할머니는 꼭 잡힌 할아버지의 손에 체중의 일부를 싣고 이 위태로워 보이는 산책을 계속한다. 할아버지의 마스크 위로 반쯤 드러난 얼굴은 오랜 세월의 색깔이 덧입혀져 검게 그을었고 흰색 마스크와 유난희 대비된다. 눈에 나타난 표정은 두 분 다 무심하고 한편으로 힘겹다. 하지만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빛난다. 3월 주황빛 저녁 햇살이 그들만 핀 조명으로 비추는 듯 내 오른쪽 시야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왼쪽 시야로 차츰 사라진다.
가끔씩 보던 풍경인데 오늘 웬일인지 울컥했다. 노쇠한 우리 부모님 같기도 하고 먼 미래의 나와 아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황혼에 이른 인생의 단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할머니께 그리 살가워 보이지는 않지만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지탱하는 손목은 늙고 힘없는 근육과는 달리 단단하다. 두 사람의 꼭 쥔 손에서 책임이 느껴지고 삶의 마지막 의지가 보인다. 저들의 내일은 어떠한 모습이 될지 감히 상상하기 두렵지만 그 손 끝에서 신뢰가 만개한다.
예전에는 무시했던 삶의 작은 불꽃들에 대해서 의미라는 것을 눈 뜨게 되는 것을 보면,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내게도 어느덧 성찰과 관조의 시절이 도래했음을 느낀다. 편협한 시각으로 섣불리 판단했던 과거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는 기쁨이 내게도 임하고 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