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인생이 우리에게 짐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사는 것을 버거워할까? 그렇게 짐스럽고 버거운데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모두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삶이 너무 부담스러워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다. 그들의 실행력을 보며 범인으로서는 감히 시도도 못하는 용기에 아무도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연민을 느끼고 그럼에도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과연 삶은 살만한가? 이 책은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지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삶이 정말로 살만해 지기 위한 독특한 시각을 철학자 하이데거의 사상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차제로서 성스러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존재의 성스러움을 기술문명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요즘이다. 모든 것을 객관성을 가지고 차가운 이성을 통해서 바라볼 때 우리의 존재는 그 고유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도 성스러움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돌멩이를 공격 위한 도구, 집을 짓기 위한 소재 등으로 파악한다. 아무도 그 돌이 처음에는 바위의 일부분이었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 이 길 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개인의 인격이나 영혼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보다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로 가치를 정량화한다. 문제는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을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자신을 이러한 시각에서 평가하게 된다. 사회적 가치관이 이렇게 형성되어 있기에 질투와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었고, 이 상황 속에서는 내가 나를 몰아세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삶은 팍팍해지고 고독과 허무와 무기력이 우리를 덮게 된다.
저자는 존재를 존재로서 보는 고유한 시각을 회복함으로써 세상의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시적 사유로 정의한다. 시인의 눈에는 존재 자체의 경이로움을 볼 줄 아는 아름다운 시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흔하게 먹고 있는 쌀은 적절한 햇볕과 수분 그리고 바람 등 자연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합력하여 이루어진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환경이 당연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시인의 사유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회복할 때 현실을 관조할 수 있게 되고,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치열한 시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참된 가치관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적 사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것을 위해서는 이미 우리 내부에 가지고 있는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준 선입견들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그러한 순간을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다. 간혹 개인적으로 죽을 위기를 겪은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듣게 된다. 죽음을 가까이 경험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추구했던 가치들의 허망함이 껍질을 벗긴 포도알처럼 드러난다. 죽음은 모두에게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속한 사회의 주요한 시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온전히 벗어나 참된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는 등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늘 인지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