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실패다. 오전에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며 ‘오늘은 기필코 라면 하나 끓여 먹어야지’ 각오를 다졌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 가는대로, 당당하게 어깨 피고 식탁에 앉아서 반드시 얼큰한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 잘 익은 김치랑 뚝딱 먹어야지. 다짐과 달리 나는 그와의 짧은 대화 후 입맛을 잃고 라면 봉지를 내려 놓았다.
나는 지금 아주 특이한 식이 장애를 앓고 있다. 특정 인물 앞에 서면 어떤 것도 못 먹는 장애다. 음식을 씹다가도 그 사람이 나타나면 그의 표정, 그가 내게 내뱉을 말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면서 입에서부터 목까지 굳어버리고 식도가 꽉 막힌 양 답답해진다.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 사람. 파킨슨이 진행중인 80대의 그 사람은, 상당수의 여성이 여전히 문맹이었던 1950년대 후반에 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한 2세대 신여성이다. 한국 전쟁 직후 한국은 사회가 보수화되고 재건의 구호가 울려퍼지던 시기였다. 당시 분위기 속에서 여성학계는 여성의 기존 사회적 역할을 깨고 사회 진출을 강조하기 보다 안전적으로 가정에서의 역할을 중시했다. 대신 과학을 곁들인 ‘과학적인 가정’ 만들기에 비중을 두고 가정을 근대화시킬 주체로서 여성을 상정했다. 그 흐름에 있는 사람인지라 그는 평생을 근대적 위생 관념에 기반한 ‘합리적인’ 살림과 ‘건강한’ 밥상을 위해 헌신했다. 각 시대가 추천하는 이상적인 밥상을 구현하기 위해 쏟아 부은 그의 노력은 고서점으로 가야할 듯한 오래된 요리책과 화장실 변기 앞에 언제나 펼쳐 놓여 있는 각종 영양 건강 정보 및 먹음직스러운 각 국의 음식 사진에서도 금방 전달된다.
관심의 측면에서 그와 나는 본질적으로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내게 위생과 영양은 가치 중립적인 영역이 아닌 근대의 산물이다. 역사학계를 한번 휩쓸고 간 지나간 주제지만, 계몽 담론과 근대 학문은 사적 영역이라 불리고 여성의 영역으로 이해된 가정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합리성과 위생은 개입의 주요 통로였다. 한국 역시 20세기 내내 가정은 계몽의 대상이었고 정치적 목표에 악용된 역사가 있다.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전쟁기 백미를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총독부는 영양을 앞세워 조선 사회에 현미 먹기 운동, 소식이 좋다고 하여 한끼 거르기 혹은 점심 거르기 운동을 벌렸다. 만주에서 수입해 온 콩, 보리, 조를 쌀대신 배급할 때도 빠지지 않는 언설이 영양가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1970년대-80년대 초에 성행했던 도시락 검사 역시 영양학적 측면을 애국심과 동시에 부각시키며 보리밥을 강요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난 ‘과학적’ 밥상과 유행보다는 상식에 맞는 선에서 각자 좋아하는 걸 먹으면 된다고 믿는다. 나와 달리 그는 현재의 과학은 불완전하지만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과학에 대한 굳건한 확신 속에 그는 평생을 최신 정보에 귀를 세우고 오류를 끊임없이 수정하며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선진적 밥상을 추구했다.
병때문일까. 최근 몇 년간 그의 음식과 영양에 대한 관심은 공포에 가까운 강박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그에게 음식은 죽음과 직결되어 '죽음은 음식으로부터 온다'는 무의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음식의 맛과 먹을 때의 즐거움보다는, 영양 성분과 그것이 일으킬지도 모르는 질병이 반사적으로 따라다닌다. 필요한 영양분을 안 먹을 수는 없으나 그 안에 들은 긍정적이지 못한 요소로 인해 끊임없이 '먹을까 말까,' '먹으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로 항시적 갈등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당뇨 걱정, 갈비를 먹으면 지방 걱정, 과일도 결국은 당이고 비타민 C의 경우 과다 섭취할 경우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많이 먹을 필요 없다고 한다. 꺼려지는 음식은 점점 늘어났다. 설탕은 물론이고 소금도 안된다. 그리고 고추가루는 장에 끼고 고추장은 위에 부담을 주니 끊어야 한다. 심지어 메주콩을 제외한 모든 콩이 대부분 탄수화물이라며 밥에도 메주콩을 넣는다. 그의 리스트에서 돼지 고기는 부위를 불문하고 끔찍한 식재료다. 짜장면을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심지어 나물도 소금 간장 짠 성분이 가미되었기때문에 안된다. 그의 세계에 허락된 것은 닭가슴살, 생선, 기름기 하나 없는 소고기, 샐러드, 잡곡밥이 그에게 허락된 음식의 범위다. 파킨슨이 성격을 바꾸고 우울증과 분노 조절 장애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것이 음식에 대한 강박증으로 발현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언어의 변화가 따라왔다. 잠들기 전 4시간 부터는 누구도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명령하더니, 어느 날은 “먹는 것에 있어서는 내가 이 집에서 황제야. 누구든 내 말을 들어야 해”라는 입 떡벌어지는 발언을 주저없이 했다. 언어 구사에 있어서 정도의 조절도 사라졌다.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형편없는," "저따위"등의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보면 그의 언어는 곧장 죽음과 연결되어 “그거 먹으면 죽는다”를 먹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리고 언어 폭력이 따라왔다. “너는 아이들을 죽이고 있어”로 시작해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당해 봐야 해,” “너, 니 아이들 잃을거야”라고 저주하던가, “엄마가 되서 영양에 관심을 안가지면 돼, 안돼?”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터져 버린 것은 물이었다. 더워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아이의 모습을 보더니 물을 많이 먹으면 신장을 망가뜨리니 물을 많이 마시지 말게 하라고 했다. 영양학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무엇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물을 많이 마시지 말라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인간이 물조차 과학적으로 마셔야 하나. 아니, 물을 과식하는 사람이 있던가?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가. 처음에 나는 “음식은 과학이 아니라 취향이다”로 반발하며 언어 폭력을 그만 두라고 말했다.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혀의 즐거움이나 쫓는 것은 비윤리적이야"라고 했다. 그의 머리 속에서 혀의 즐거움과 윤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도통 모르겠으나 변하지 않는 태도에 나는 한바탕 집안을 뒤집고 선언했다. “음식이 넘어가질 않아서 같이 못 먹겠다.” 그의 밥은 그의 철학에 맞게 그가 한다. 밥상을 따로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스윽 다가와서 밥상을 쳐다보고 영양학적 계산을 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 보고 간다.
내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하던 순간도 그랬다. 그가 다가와 내게 건넨 첫 말은, “너 어제 멸치 국물에 국수 말아 먹었지?”였다. 맞다. 어제 국수 먹었다. “닭가슴살…”을 꺼내는 순간, 나는 그의 최근 2-3년의 관심인 단백질에 대해 한 판할 자세임을 눈치챘다. 영양학으로 시작하여 언제나처럼 나의 무식을 한탄하는 것으로 끝이 날 터였다. 빨래를 핑계로 급히 자리를 피해 버렸고 결국 나의 라면은 또 날아갔다.
이유는 모르지만 잠들기 전 박완서 전집 4권을 집어 들었다. <<해산 바가지 (1985)>>가 눈에 들어왔다. 1남 4녀를 둔 5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친구는 아이는 둘만 낳겠다고 선언한 며느리가 두번째에도 딸을 낳았다며 “우리집 대를 끊으려는” 며느리에게 분노를 표한다. 주인공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해 보지만, 친구는 주인공에게 너도 아들 낳고 싶어서 딸을 넷이나 낳은게 아니냐고 화를 낸다. 주인공은 자기가 딸을 낳던 아들을 낳던 한결같이 귀하게 여겨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떠올린다. 주인공의 기억 속에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보인 노망 증세에 주인공은 신경 안정제에 의존하게 된다. 목욕시킬 때는 분노에 휩싸여 옷을 확 벗기고 욕조로 떠밀고 감정을 담아 때를 밀었다. 결국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 둘러볼 요량으로 남편과 요양원으로 향한다. 요양원 근처 한 초가집 지붕에서 잘생긴 박을 본 후 그녀는 발을 돌려 집으로 온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똑같은 해산 바가지에 미역국과 밥을 주던 시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 분이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었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에 대한 이해도도 낮고 경험치도 적은 20대, 나는 박완서 작가가 그리는 여성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었던지라 나는 그저 과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세 가지 이유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박완서의 세계에서 여성은 뭉치지 않는다. 오랜 친구 간에도 아들이란 대수롭지 않은 주제로 서로 다툰다. 여성은 서로 이해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믿었던 20대의 내게 그 사실은 버거웠다. 두번째, 박완서의 세상에서 여성들은 폭력적이다. 이들은 이성적이지 않다. 장소가 허락만 되면 부엌이던 장례식장이든 한 명을 목표를 잡아 저열하게 헐뜯고 흉본다. 목욕시킨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감정을 담아 아프게 때를 민다. 이성으로 분노를 억제하고 서로 기본적으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배웠던 나의 20대에 그들의 모습은 그저 인상 찌푸리게 되는 ‘왜 저래?’였다. 세 번째는 여성들이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의 경험에서 배운게 없는 양 그때 그때 태세가 바뀌는 모습은 웬지 '여자는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다'라는 통속적 묘사를 따라가는 듯하여 거북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세 가지 이유, 그 모두가 지금 내 모습이다. 그 사람과 나는 현재 대치 상태다. 한 쪽이 언어로 할퀴면, 다른 한쪽은 무례함으로 받아친다. 안다, 이 대치 상황이 절대로 이성적인 대화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안다, 나의 그 사람도 찬란한 정신이 있던 시절이 있었고 우리에게도 배려하고 격려했던 기간이 갈등과 대치의 기간보다 더 길었음을. 나는 부엌이 그에게 가진 의미도 안다. 부엌은 그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의사 결정을 내릴수 있는 몇 안되는 그만의 공간이었다. '과학적' 밥상은 사그러드는 육체와 줄어드는 존재감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내 의견도 들어달라'고 외칠수 있는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모르겠다. <<해산 바가지>>의 주인공처럼 내가 나의 식이 장애를 극복하고 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