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치고 장구치고 얼쑤~~
릴리리야 ~~ 릴리리야~~
덩덩 덩더꿍.. 노랫가락 속에 장구소리가 집안에 울러 퍼진다. 유튜브의 민요 메들리를 틀어주면 박스 장구로 장단을 맞추시며 즐거워하시는 아버지다.
"춤춰라"를 외치시는 아버지의 장구 장단에 맞춰 나도 옆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그러면 아버지는 신이 나서 "잘한다"를 외치며 더욱 신나게 장구를 치신다. 길면 한 시간 짧으면 30분 정도의 짧은 둘 만의 공연이 끝나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마무리를 하고 커피와 과일파티를 한다.
노래면 노래 장구면 장구 춤이면 춤 운동이면 운동 뭐든 능수능란한 팔방미남이셨던 아버지는 어릴 적 나의 롤 모델이었다. 정월 대보름, 백중은 물론이고 동네의 크고 작은 잔치가 있으면, 아버지는 풍물패의 앞잡이로서 꽹과리를 치거나 장구를 치셨다.
노래실력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소유했기에 잔치집에는 어디든 불려 다녔고 아버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다른 동네에 불려 다니기 바빠 정작 가까이서 아버지가 장구나 꽹과리를 치시는 걸 본 기억은 없다.
어느 집 어른의 회갑날이나 결혼식 등 굵직한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농악패들이 무리 지어 동네를 돌며, 천지를 진동시키는 흥겹고도 요란한 풍물 소리는, 적막감이 감도는 몇 가구 안 되는 동네 사람들을 흥분시키에 충분했다.
노래방이 없던 옛 시절에는 계모임이나 대학 입학식 졸업식등의 축하파티를 주로 집에서 치렀고 식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술잔이 오가고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합창을 하거나 돌아가며 독창을 부르는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곤 했다.
그곳에서도 아버지의 노래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보적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거기다 훤칠한 키와 비율 좋은 신체를 가졌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어딜 가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인기 만점이었다.
그에 비해 엄마는 작고 찢어진 눈에 납작코 튀어나온 광대뼈 어디 하나 예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엄마를 닮지 않고 아버지를 닮은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엄마를 닮았으면 어쩔 뻔했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철없던 어린 시절 생각 없이 몇 번 내뱉었던 나의 말에 엄마가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새삼 죄송한 마음이다.
그림 그리기나 악기연주, 책 읽기 등이 치매 예방에 유익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궁여지책으로 아버지께 장구 치기 놀이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박스 두 개를 마주 보게 엎어서 장구를 만들어 고장 난 빨래 건조대에서 건진 금속채를 쥐어 주며 치라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협조해 주셨다.
요양보호사가 작년 9월에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매검사를 했었는데 치매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기억력이 깜박깜박할 때가 있겠지. 그냥 그 나이에 겪는 단순한 노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계속 나를 몰라보는 건 아니고 정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가끔씩 삼천포로 새는 식이라 뭐라고 단정하기도 애매하다.
하여 지금부터라도 치매 예방에 좋다는 건 뭐든 차근차근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꾸준히 같이 참여하려고 한다. 박스 장구가 신기하게 장구소리는 나면서도 고음은 아니어서 층간 소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좋다.
장단 맞춰 박스를 치며 즐거워하시는 해맑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면 아버지도 키득거리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서로 마주 보고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고 나면 엔도르핀이 팍팍 도는 느낌이다.
치매야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