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자리마다 향기로 말한다.
"문 닫아라 춥다." 밤사이 발효되고 농익은 공기와 상쾌하고 신선한 바깥공기를 교체하는 일이 하루의 첫 일과이다. "아버지 금방 닫을게요. 오염된 공기를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로워요. 이불 덮고 누워 계시면 안 추워요." 그래도 오래 살고는 싶으신지 건강에 해롭다면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 아버지시다.
아버지의 엉덩이가 닿은 자리는 늘 소변 향기로 가득 찬다. 같은 자리를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닦아야 하는 하는 것을 노동이라 생각하면 힘들고 지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흔하고 뻔한 소리는 이제 식상하고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같은 상황 같은 환경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객관화를 토대로 한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가능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보인다. 자존심, 양심, 배려심이다. 가슴의 심장이 뜨겁게 펄떡이고 있는 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엄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 본성을 초월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환자와 정상인을 가로막는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친구로 이어지는 장이 펼쳐진다.
어차피 기저귀를 채우는데 화장실을 굳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변기 뚜껑이나 화장실 바닥에 흔적을 남기시는 아버지의 행위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실을 따라 들어가 기저귀를 벗기고 채우는 걸 도와 드리니 민망해하시는 표정이 역력했다.
잠깐 다른 일 때문에 못 도와 드리면 기저귀를 다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볼일을 보는 바람에 변기 뚜껑은 물론 기저귀에 변이 묻어 옷까지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니 소변 눌 때는 혼자 힘으로 처리하더라도 대변 눌 때는 꼭 말씀하시라고 당부를 해도 끝까지 고집을 부려 화가 울컥 치밀게 한다.
물티슈로 엉덩이를 꼼꼼히 닦아드리고 기저귀의 매무새를 다듬는 딸의 손길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민망해 어쩔 줄 몰라하시는 아버지의 눈빛을 매번 대하면서 나는 가슴으로 울고 있다. 그 눈물이 흘르고 흘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를 이룬다. 그 끝없는 눈물바다 한가운데서 아버지와 나의 몸을 실은 돛단배가 거센 풍랑에 아슬아슬하게 사투를 벌이는 환상에 젖곤 한다.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는 높고 커다란 산이었던, 산천초목도 떨 만큼 엄하고 빈틈없던 아버지는 오간데 없고, 바싹 마른 명태처럼 힘없는 육신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길 내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아이로 남아있다. 지금의 아버지가 비현실적이고 여전히 낯설다.
나는 철저히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딸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아비가 되어 도움은커녕 너에게 짐만 되는구나. 하지만 한 번씩 기억이 깜박거리고 쉬운 일들도 제대로 못하지만 말이다. 바보는 아니란다. 그러니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고 싶구나. 본의 아니게 여러모로 폐를 끼쳐 미안하구나." 휑 하지만 자애를 가득 품은 아버지의 눈빛이 말하고 있음을 나는 날마다 매 순간순간마다 느낀다.
여기저기 소변의 향기로 가득 채워진 집안에 걸레질을 하면서, 그 옛날 기저귀 찬 아기였던 나를 마냥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을 아버지의 그 사랑과 결이 다를지라도 한없는 연민의 정으로 바라본다. 이치에 어긋나는 엉뚱한 소리를 하시면, 옹알이를 막 시작하던 나를 천하에 둘도 없는 환희로 품어주었을 그 옛날의 아버지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사함으로 전환시켜 바라보게 된다.
아버지의 자존심, 딸한테까지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드리자.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엄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드리자. 가끔 헛소리를 하지만 아직은 맑은 정신일 때가 더 많은데 초라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자신을 책망하고 또 책망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초월해 자식을 1순위에 두고 늘 안위와 행복을 빌고 비는 그 자상함과 배려심에 한없이 고개가 숙여지는 아버지다.
아버지, 당신은 존재만으로 내게 힘이고 행복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