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곳의 문학밴드에서 여러 작가님들의 시와 산문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매일 각각의 밴드에 올라오는 20여 편의 게시글들은 거의 빠짐없이 읽었고, 좋은 글을 읽은 대가로 장문의 댓글로 작가님들과 소통하는 것이 일상의 즐거움을 넘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밴드에 묻혀 살았다. 당시 아들이 난치병으로 휴학을 하고 있던 시기라, 문학밴드는 내가 숨통을 틜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고 신세계였다.
또한 빛하나 스며들 틈 없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갇혀 끝없이 절망하던 내게 손 내미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시를 붙들고 한여름밤의 소나기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시시때때로 심장을 난도질하는 통증으로 삶의 의미를 상실해 가던 내게 그곳은 구원의 빛이었고 영혼의 안식처였다.
유년시절에는 책이 없어서 못 읽었고 청춘일 때는 흥미가 없어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우습게도 40대 후반이 되어서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든 들어가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는 sns 공간인 문학밴드에서 살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중 유독 애착이 가는 밴드가 있었다. 문학회 회장님과 몇 분의 시인님들은 오프라인에서는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으나 시인과 독자의 관계로 댓글 소통을 3여 년을 하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문학밴드 독자 3년이면 글을 창작한다."는 신조 속담을 탄생시키며, 문득 나도 작가가 되고픈 목마름이 창작의욕의 시발점이 되었다.
때마침 세 곳 중 한 곳인 모 문학회에서 공모전을 하고 있어 세편의 시를 올렸고 그중 한편이 채택되어 등단을 하게 됐다.
등단한 문학회에선 매일 한편 정도의 시를 올리며 시인들과 공감을 나누며 지냈지만, 다른 두 곳의 밴드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시와 산문을 읽고 댓글만 달며 독자로서의 자리만 고수했다. 평소 밴드에서 친분을 쌓았던 한 문학회장님이 가끔씩 자신이 운영하는 문학회에 등단을 권유할 때마다 "아직은 실력이 미숙하다 혹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었는데 내가 등단한 기점으로부터는 하루 한번 꼴로 일창을 들이닥쳐 자신의 문학회에 등단할 것을 권유하는 바람에 난처했다.
이미 타 문학회에서 등단을 했다고 하면 배신자로 눈총 받을 것 같고 묵인하기엔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아 탈퇴를 할까도 생각했으나, 그러기엔 유독 그 밴드에 올라오는 글들이 심오하고 공감되는 글들이 많아 놓치기엔 아까웠다. 최대한 버티다 궁지에 몰리면 탈퇴할 요량으로 등단한 사실을 비밀로 하고 조용히 작가님들의 주옥같은 글들을 감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일창으로 들어와 써 놓은 시가 있으면 첨삭을 해 줄 테니 한번 올려 보라고 했다. 예전부터 등단권유와 함께 귀가 따갑게 들어온 터라 내키지 않았으나, 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 해 제일 아끼던 시 한 편을 올려드렸더니 첨삭이라는 명목으로 마지막 연의 전체인 세 문장을 빼고 아예 다른 문장으로 대체해 보내왔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쓴 게 더 마음에 들어 원작시 그대로 간직하기로 하고 예의상 고마움은 전했다.
명색이 한국의 문단을 이끄는 문학회장이란 분이 기본적인 맞춤법도 맞지 않아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매하면 맞춤법 교정앱을 통해서라도 퇴고를 한 후 전달하는 게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기본 상식일 것이다. 그러다 그분도 나의 고집불통에 지쳤는지 한동안 잠잠해졌고 그로부터 1년이 바람처럼 흘러갔다.
다음 해 10월이 되었고 그 문학회 밴드에서 등단자를 모집한다는 밴드 공지가 올라오고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그러던 중 그분이 하반기에 출간될 공저에 실을 예정이라며 시를 한편 밴드 공지란에 올렸다. 그런데 어딘가 낯익은 문장이 눈에 띄어 자세히 보니 1년 전 나에게 첨삭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내 시에서 제외시켰던 세 문장이 본인의 시에 그대로 표절되어 있었다. 며칠의 고민 끝에 그분께 제 시의 문장이 왜 회장님의 시에 들어 있냐고 따져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 문장은 빼고 다른 문장을 넣어 첨삭을 해 주었으니 내가 그 문장을 사용한다 해서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도 표절도 아니라고 했다.
그분 말대로 내 잘못인 걸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솔직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타 문학회에서 등단을 했었던 사실과 당시 회장님의 시 첨삭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차마 드릴 수가 없어서 원작시를 이미 3개월 전에 공저에 실었던 사실을 소상히 전했고, 원작시가 실린 페이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왜 미리 말 안 하고 날 속였냐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쳤다.
나도 처음부터 내 견해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 잘못도 있기에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분이 되려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럼 회장님은 첨삭의 목적이 남의 창작품을 가로채기 위한 교묘한 수법이었나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만약 회장님 글을 누군가 똑같은 수법으로 표절했다면 조용히 넘어가겠어요?"라고 항변했더니, 그에 대한 답변은 없고 당장 이 밴드에서 탈퇴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붙잡아도 나가려던 참입니다.
문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될 회장이란 사람이 남의 창작물을 훔치고 창작자의 자긍심과 의욕을 꺾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이라니 실망이군요.
법을 떠나서 양심의 가책도 윤리의식도 실종된 자격미달에, 비인격적인 사람이 회장으로 버티고 있는 이런 엿같은 밴드에 더 이상 머무를 가치도 이유도 없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라는 글을 남기고 탈퇴해 버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후련한 게 아니라 찜찜함으로 오래도록 마음을 괴롭혔다.
그로부터 3여 년이 흐른 후 어느 음악밴드에서 그 회장님과 운명처럼 마주했다. 다행히 일창이 열려있는 밴드여서 그 회장님이 곧장 채팅을 걸어왔지만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다. 이미 그분과는 과거에 좋지 않은 일로 끝난 인연인데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싶었다. 그러나 끈질긴 일창 요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응대했더니 뜻밖에도 그 회장님은 과거 자신의 저작권 침해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너무 탐나서 치사한 방법으로 가로챘노라고 본인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사과할 방법이 없었노라고 했다. 그 사건만 놓고
보면 괘씸해 용서고 뭐고 무시하고 싶은 맘 굴뚝같으나, 어쩌겠는가? 강력범죄인도 아닌데 굳이 사과를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계획적인 의도로 접근한 것이 명백한 정황이었기에 자존심도 상했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당시 첨삭 시에 대한 내 견해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 불찰에 대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의 사과로, 그 해프닝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의든 실수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자라면 비난을 멈추어야 하고 사장돼야 할 표적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또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지혜를 확장하고 한걸음 더 성장을 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축복의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