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자식 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사제간의 사랑 등이 있다.
자신의 엄격한 잣대나 기준을 정해 놓고 따르기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요구나 희생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 중 우연한 만남이 아닌 중매인을 통해 맺어진 사랑은 조건이 전제된다. 왜냐하면 결혼 소개소를 통한 만남은 최대한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조합해 만남을 성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개소 측에서 정한 일정한 규정과 요구사항인 스펙이 그들의 기준에 충족되지 못하면 가입 자체가 안된다. 요즘 시대에 소개소를 통해 맺어진 사랑이라고 해서 속물적이고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모순이다. 분명 자신이 원하는 취향이나, 학벌, 직업, 경제력이 어느 정도 맞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실패를 줄일 수도 있고 현명한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 이루어진 사랑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신뢰와 친밀감을 쌓아가는 중에 사랑이 깊어지고 결국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일단 돈독한 신뢰의 바탕 위에 굳건히 세워진 사랑이라면 이미 상대의 스펙과 부, 명예가 무의미하게 된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람이기에 그 조건 없는 사랑에 내 전부를 던질 수 있다. 또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에 의미를 두게 되고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 주기를 바라는 대가성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며 이미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감시와 통제, 간섭으로 집착하는 사랑,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랑도 쉽게 지치게 되고 결국 파탄으로 끝날 수도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로 옭아매는 행위 또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부부는 한 몸이 될 수 없고 각자가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할 개체로 보아야 한다.
가끔 주위에서나 매스컴에서 회복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난치성 질환이나 식물인간이 된 배우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을 만난다. 오직 그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영혼까지 바쳐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기에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고 참 사랑이리라.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 모습으로라도 내 곁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고.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라고.
그들의 일상을 깊이 파고들면 우리가 모르는 사정도 있음을 알게 된다. 나 같은 사람 만나 고생만 하다 허리 펴고 좀 살만 하니 이런 병마가 닥쳤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내가 가정을 등한시하고 밖으로만 나돌다가 배우자가 쓰러지고 나니 그의 희생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속제하는 심정으로 돌봄을 자처했노라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헌신적인 돌봄을 당연하다 말할 수 없으며, 강요할 수도 없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그들은 일방적으로 강요된 사랑이나 희생이 아닌,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순애보 사랑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인으로부터 귀감이 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당신은 내 전부를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 그 사랑 앞에 인력으로 역부족인 큰 시련이 닥쳐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내 영혼까지 불태울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있는가?
사진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