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칠천 명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아도 신앙을 지킬 수 있나요

by 철인

올해 1월부터 매주 화요 성경묵상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성경 공부나 묵상을 나누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지만, 그것보다도 성경을 읽기 위한 일종의 동기부여가 필요해서 참가했다. 그런 강제력이 없으면 나날의 일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성경을 읽기란 쉽지 않으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성경을 읽다 보면 새롭게 깨닫는 점도 많고, 전보다 더욱 깊이 있게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지금, 성경 속 인물들을 보는 관점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릴 적에는 그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이렇게 복을 받는구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본인의 사익과 안전을 모조리 내던지고 신념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뼈저리게 알기 때문이다. 사소한 이득 하나만 놓쳐도 손이 덜덜 떨리는데, 거기에 자기 목숨까지 걸린 상황에서 생명보다 신앙을 택하다니. 비범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신앙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당당히 이름을 새긴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명 Nameless 인 자들도 많다. 이름도 없이, 살았다는 흔적도 없이 묵묵히 신앙을 지키다 죽어간 대표적인 예로, 열왕기상 19장에 등장하는 칠천 명의 의인이 있다.


618a145d2e7c6269678131.png 열왕기상 19장 18절 이미지 (출처: https://alayluya.com/article/youre-not-alone-1011)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8)"


엘리야가 혼자 아합 왕과 맞서야 하는 현실에 하소연하자, 이를 들은 야훼는 "걱정 마, 아직 너 같은 의인 칠천 명 남겨 놨어!"라고 말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일단 성경 상의 기록으로만 따지면) 아합과 그의 왕비 이세벨이 온 나라에 바알 신앙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어기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는 극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바알 숭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이가 무려 칠천 명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들을 향한 대우이다. 이 이름 없는 의인들은 겨우 열왕기상의 한 구절에만 등장할 뿐이고 이후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거진 열왕기상에만 등장하는 단역(?)이라고 쳐도 무방할 정도로, 성경의 저자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뭐랄까, 너무 대우가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모세 5경을 보면 열두 지파의 계보라는 이유로 아무런 업적을 남기지 않은 이들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록해 주는데, 그것과 비교해 보면 목숨까지 걸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그냥 '있었다'는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면 좀 불공평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내 생각이 너무 세속적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저 7천 명은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신앙을 지킨 게 아니다. 그저 하나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는 무한한 충성심에서 그리 행동한 것이지,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치려고 그리 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 말았는지는 그들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설령 자신이 잊히더라도 신앙의 불꽃이 이어진다면 그걸로 족하다 여기고, 기꺼이 본인들의 이름을 지우고자 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의 내가 품은 이 의문도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발상인 것이다.


c01ef8fb-0bab-4932-a79c-5e86d3472971-thumbnail.jpg 오롯이 신앙과 위해 무릎 꿇지 않은 이들에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다니 불쌍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하는 만큼, 특정한 이득을 목적으로 헌신한 것은 높게 쳐주지 않는다. 아니, 높게 안 쳐주는 걸 넘어서 아예 '하나님이 아니라 제 한 몸을 위한 것'으로 격하되어 버린다.


그렇다 해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다. 이름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치더라도, 반대로 이름을 남기지 않을 이유 역시 없지 않은가? 애초에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도 그저 '누구누구의 족보'라는 명목으로 당당히 성경 한편을 차지하는 걸 보면, 오히려 이 칠천 명이야말로 이름을 남길 여지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다니.


이럴 때면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는 기준은 뭘까?

후세에 가르칠 가치가 있는 이름만이 기록된다면 저들은 왜 기록되지 않았나?

저들이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지 않아서 기록되지 않은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건 업적이 아니라는 뜻인가?


등등...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천국에 직통 전화라도 걸고 싶다. "하나님,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박하게 대우를 받나요? 네? 대답 좀 해주세요!"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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