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줄까, 사랑을 줄까

너는 하늘을 날고 싶니, 안전하게 갇혀 살고 싶니?

by 철인

어제는 산책 겸 어머니와 함께 달성공원에 갔다. 오랜만에 푸릇푸릇한 자연의 색깔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우리들은 기분 좋게 달성공원으로 향했다.


KakaoTalk_20241026_173805953_01.jpg 시민의 문: 이런 문이 있었던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기억도 안 난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도통 주변 지리를 모르겠다. 네이버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쭉 따라가니 왠 커다란 문이 보였다. <시민의 문>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이 떡하니 걸린 나무 문이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인 유치원생들을 보자 그런 의심은 싹 사라지고 '그랬지, 나도 저랬었지'하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은 색동옷을 입은 원생들의 뒤를 따라 쭐래쭐래 공원에 입장했다.





어머니와 나는 곧장 동물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동물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때는 텅 빈 동물 우리만이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니까. 그로부터 10년은 넘게 지났으니 너무 오래돼서 다 철거했거나 기껏해야 닭이나 너구리 같은 동물이나 남아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이 "우와-"하고 내지르는 탄성에 호기심이 생겨 따라가 보니 제법 동물들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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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한테 엉덩이를 쪼이는 꽃사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칠면조/ 헤엄은 안 치고 문 앞에서 시위하는(?) 물개들


선명한 아롱무늬를 뽐내며 느긋하게 뒹굴고 있는 꽃사슴 무리들, 정신없이 깃털을 다듬는 칠면조, 서로 물장구를 치며 티격태격하는 물개들. 예상외로 동물의 종류도 많았고 널찍한 산책로도 잘 마련되어 있어 동물원의 구실은 해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대로 길을 걷다가 조류 코너를 돌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커다란 독수리 한 쌍이 있었다.


KakaoTalk_20241026_173805953_04.jpg 독수리 한 쌍. 둘 다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창살 너머를 바라보기만 한다.


나와 엄마는 순간 깜짝 놀랐다. 독수리가 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거의 7, 8살 아이 정도로 보일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앉은키만 해도 저 정도로 큰데 날개까지 펼친다면 초등학생쯤이야 거뜬히 낚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진짜 그럴 것 같다면서 몸서리를 치더니,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쟤네들은 계속 여기에 갇혀 살면 바보가 되지 않을까? 사람이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면 나는 법도 까먹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동물원에 와서 순진하게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환상을 깨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조금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렇겠지, 아마 쟤들은 죽을 때까지 평생 우리에 갇혀 살 테니까 야생에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못 살 거야."


그러자 어머니는 어머머, 하는 안타까운 탄성과 함께 "안 됐구나, 인간은 참 못됐어"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독수리는 짧게 껙껙거리는 소리를 내지르더니 날개 밑에 고개를 파묻었다. 마치 더 이상 바깥을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듯, 갇혀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에서 눈을 돌리려는 듯.




그 뒤로도 우리는 동물원을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방금 전의 대화가 머리에 남아서일까? 왠지 모르게 동물들을 볼 수록 우울한 기분에 잠겼다. 등을 돌린 채 잠든 호저를 보면 몸을 가릴 안전한 땅굴 하나 없이 맨몸으로 햇빛을 쬐는 것이 얼마나 불안할까 싶어서 가엾은 생각이 앞선다. 아이들의 환호성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힘없이 엎드러진 곰의 귀에 귀마개라도 씌워주고 싶었다.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내건 동물들. 자신의 몸에 각인된 본능과 전혀 다른 환경에 내몰린 심정은 어떨까?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과연 그것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뒤섞인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정리해 보려고,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엄마가 독수리라면 어떨 것 같아? 평생 하늘을 못 나는 대신에 우리 안에서는 온갖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 꼬박꼬박 식사도 나오고 안전하게 살 수 있어. 엄마는 자유를 원해, 사랑을 원해?"

"당연히 자유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대답에 오히려 질문을 던진 쪽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본 어머니는 변화나 흐트러짐보다는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삶을 선호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사랑보다는 자유를 원한다고 단언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은 얽매여서 사는 게 싫다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편이, 안전하지만 부자연스럽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이다.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공원을 나서자, 문득 머릿속에 창세기 1장에 적힌 구절이 스쳤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성경에는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최고의 상태라고 말한다. 그것도 창조주가 직접 "보기에 좋았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최적의 상태라는 뜻이다. 그 삶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설령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삶이라 해도 그것이 가장 보기에 좋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저 몸이 편한 게 최고요, 고난이나 역경은 없을수록 좋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평안함에 온몸이 마비된 채 그저 철창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봐야만 한다면 그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속에 가만히 갇힌 채 남들에게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삶이라면, 나는 그런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도 한 번 묻고 싶다. 여러분은 자유를 원하나요, 아니면 사랑을 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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