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안녕하세요, Y입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당신은 종교를 믿나요? 아, 이상한 뜻은 아닙니다. 포교 활동이나 도쟁이는 아니니까요.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일평생 저의 삶에는 당연히 교회와 신이 포함되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라'는 가르침이 깊게 뿌리 박혀 있을 테죠. 그래서 그런지 종종 무교로 사는 사람들이 신기합니다. 과연 신을 의지하지 않는 삶은 어떨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가거든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가르침에 철저하게 따른 결과, 이번 여행 기간 중에도 주일예배에 빠짐없이 출석했습니다. 바쁜 여행 일정 중에서도 묵묵히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입니다. 또, 묵상을 통해서 쉴 새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안을 잠재우고 내면의 안정을 취하고 나서야 다음 목적지로 떠날 준비가 갖춰지니까요. 순탄한 여행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굳이 일요일이 아니라도 여행 일정에 기도 시간을 포함할 수 없을까,' 그리 생각하던 참에 학교 선배가 좋은 정보를 알려줬습니다.
"그러고 보니 Y 자매님은 세키구치 주교좌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에 가보셨나요? 거기는 건축물도 정말 예쁘고 누구든지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으니까, 꼭 한 번 가보세요."
그 말을 들으니 오늘 하루는 기도하며 보내고 싶어 져서 성 마리아 대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유라쿠쵸선 지하철을 타고 에도가와바시역(江戸川橋駅)에서 내려서 15분만 걸으면 됩니다.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자 어느새 눈앞에 커다란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성 마리아 대성당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단게 겐조(丹下健三)가 설계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후지 테레비 본사 등이 있죠.
유명 건축가의 작품답게 곳곳을 둘러보면 뛰어난 조형미가 돋보입니다.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자가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건물 전체가 4방향으로 지어져서 상공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고, 본당에는 폭이 좁고 긴 창문 앞에 거대한 십자가가 높게 서 있습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마리아 대성당은 이런 독특한 설계 덕분에 유명세를 탔습니다. 사진으로 가장 잘 알려진 본당은 아예 상시 공개 상태고, 성당 옆에는 기념품 가게가 떡하니 차려져 있을 정도예요.
그 때문에 오히려 조용히 기도할 곳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살짝 실망스러웠습니다. 조형미가 과하게 화려하다고 할까요, 정숙하지 못하다고 할까요? 교회가 아니라 관광지 느낌이 물씬 풍겼죠. 그나마 본당 내에서는 '절대 정숙, 사진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기도실은 고요한 공기가 감돌았습니다.
예배석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면 높게 치솟은 창문을 따라 저절로 시선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천장에서 반짝이는 빛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죠. 온통 철조 콘크리트와 스테인리스 판으로 뒤덮여서 칙칙한 건물 안을 칠하는 유일한 유채색이 바로 저 빛입니다.
하늘에서 빛 가루가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자로의 부활이 생각났습니다. 캄캄한 돌무덤 속에서 죽어있던 그도 눈을 떴을 때 바로 이런 기분이었겠죠. 어둠 속에서 비추는 희미한 빛을 따라 걸어가자 그는 돌무덤을 벗어나 다시금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내내, 저에게도 나자로가 봤던 빛이 비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습니다.
아쉽게도, 긴 침묵을 깨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거든요. 십자가를 올려다보려 고개를 들었다가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곳에는 수태고지를 받아들이는 요셉과 마리아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부부는 신앙의 모범으로서 천주교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둘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이들입니다. 당시 시대상으로 비추어 봤을 때 약혼한 처녀가 아직 미혼인 채로 아이를 가졌다는 건 사형을 당해도 마땅한 대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담하게 수태고지를 받아들인 마리아와 자신의 약혼녀를 배려해서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 저 둘은 말 그대로 시대를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신념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셈입니다.
그런 인물들의 동상을 감상하고 있으니 구름 낀 제 마음에도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비록 성경이나 종파에 따라 지나가는 조연으로 다뤄지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인 깊은 신심만큼은 계속해서 성도들의 모범이 되고 있죠. 사람들에게는 경시받더라도 신은 사회적 위치도, 인간관계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진 그들의 헌신을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신을 믿는 이유와 관련됩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신에게만큼은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소망이 제 신앙의 동력원이니까요.
유명해지고 싶지만, 동시에 무명한 사람으로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그럴 위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저를 압도합니다.
부와 명예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런 것들이 제 정신을 타락시킬까 봐 걱정합니다.
온갖 모순된 감정이 꼬이고 꼬인 저로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할지, 또 어떤 생각이 정답일지...... 기도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말문이 턱 막히고 명상으로 맑아졌던 머릿속이 다시금 뿌얘지죠.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마리아와 요셉 부부를 보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신이 나의 가는 길을 축복하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또 어떤 이들의 기억에 남고 싶은가요? 당신은 이미 답을 내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답을 찾아가는 도중일 수도 있겠죠.
저 같은 경우는 아직 정답은커녕 질문을 던질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묻고자 합니다. 너는 누구의 기억에 남고 싶은 거냐고 말이죠.
그럼 오늘의 편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4년 춥고 흐린 날, 도쿄 대주교좌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Y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