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탱하는 집밥의 힘
약 한 달간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대부분 집에서 해먹은 나의 소소한 집밥 기록.
집밥을 해 먹으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식재료는 최대한 건강한 것으로 사기
채소와 과일은 못생기더라도 무농약을 사는 것을 지향했다. 가공식품도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안 사려고 노력했다. 식품을 사기 전에는 성분을 확인하고 첨가물이 최소한으로 들어간 것을 사려고 했다.
2. 조리를 최소한으로 하기
조리 과정이 너무나 길어지면 더운 여름에 더위를 먹은 것 같이 진이 빠져서 밥을 먹기도 전에 지쳐버리게 되었다. 최대한 불을 덜 쓰고자 했다.
3. 플레이팅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플레이팅도 사진도 훌륭한 콘텐츠들이 정말 많다. 나는 플레이팅이나 사진에 재능이 없어서 (ㅠ)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잡았다.
이렇게 세 가지를 지키니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삼시 세 끼를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지금까지 해먹은 집밥 일기 스타트!
이건 내가 정말 자주 먹는 한식 조합인데 오징어볶음과 얼갈이배추된장국에 삼치구이와 두부까지 곁들였다. 한식에서 부족할 수도 있는 단백질을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는 구성이다. 오징어볶음은 생물 오징어를 사서 내장을 손질한 후에 냉동실에 얼려둔 후 필요할 때 꺼내 쓴다. 된장국에는 얼갈이배추를 넣었는데, 근대, 시래기를 거쳐 얼갈이배추가 가장 시원해서 이걸로 정착했다.
이건 한식을 먹고 싶지만 반찬을 여러 개 먹고 싶지는 않고 설거지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 싫을 때 먹는 비빔밥 조합이다. 특히 여름에 정말 좋은데 불을 많이 안 써도 되니 가스레인지 앞에 있는 시간도 줄어들고, 가벼운 한 끼를 먹고 싶을 때 자주 찾아 먹는다. 밥을 밑에 깔고 오이고추를 가위로 대충 자르고 된장+들기름+땅콩버터 조합의 소스를 넣은 후 김가루와 달걀프라이를 올렸다. 부족할 수도 있는 단백질은 간장 참기름 연두부로 보충했다.
봉골레는 가장 자주 먹는 파스타인데, 일단 바지락이 가장 구하기 쉽고 저렴하고 (500g에 5천 원 정도), 가격에 비해 너무 맛있고 과정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이다. 봉골레만 약 20회 이상 만들어 본 경험에 비추어 보아 봉골레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단연 '크리미 한 소스'이다. 올리브오일과 면수, 조개 육수와 화이트와인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잘 섞여서 파스타면에 착! 달라붙게 해 주는 게 포인트이다.
가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봉골레를 먹으면 기름이나 육수가 흥건한 경우가 있는데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맞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만테까레 (팬을 앞 뒤로 움직이면서 소스와 면을 하나로 합쳐 주는 과정)를 해주어도 크리미 해지지 않는다면 버터나 밀가루를 넣어주면 분명 크리미 한 소스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탈리안 파슬리는 봉골레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이탈리안 파슬리는 살짝 고수같이 생긴 허브인데 상쾌한 향이 난다. 줄기는 마늘을 올리브오일에 볶을 때 넣어서 파슬리 향 기름을 내주는데 쓰고, 잎은 잘게 다져 마지막에 올려서 섞어 먹는다. 파스타에 초록색이 더해져서 보기에도 예쁘고 말리지 않은 생 파슬리는 향이 강해서 봉골레의 조개 감칠맛에 정말 잘 어울린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특별히 가장 비싼 접시에 담아 주었다.
카프레제는 봉골레와 자주 같이 먹는 메뉴이다. 이탈리아의 요리는 한국의 여름에 먹기에 정말 딱인데, 한국 여름의 제철 채소가 이탈리아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재료라 그렇다.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토마토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의 토마토는 정말 정말 비싸서 먹을 수가 없다) 물론 한국은 토마토를 오래전부터 먹던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지 토마토의 맛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고, 나 역시도 어렸을 때 토마토는 과일처럼 설탕을 뿌려서 먹던 것이었으니, 토마토를 요리에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참 어색했었다. 그러나 토마토는 '달달하게'가 아닌 '짭짤하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토마토의 감칠맛이 소금과 만나면 업그레이드되고, 여기에 올리브오일까지 더하면 최고의 조합이다. 그래서 토마토+치즈+페스토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이건 날씨가 조금 덜 더워서 오랜만에 불 앞에 서본 날의 점심 식사다. 부추 한 단이 있길래 냉장고 속 재료와 이리저리 조합을 해보다가 새우부추전을 부치고, 액젓과 고춧가루만 넣어서 간단하게 부추무침을 했다. 부족한 단백질은 고등어구이로 보충!
하지감자라는 말도 있듯이 감자는 대표적인 여름을 알리는 작물이다.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 '다정소감'에는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해서 하짓날 즈음 제철인 감자와 보리로 만든 감자칩과 맥주를 먹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에세이를 본 이후에는 나도 하지가 되면 무조건 감자가 떠오른다 ㅋㅋㅋ 하지만 감자칩은 몸에 좋지 않으니 나는 대신 감자 샐러드를 해 먹기로 했다. 삶은 감자와 달걀을 으깨고 소금에 절인 오이를 넣고 홀그레인머스터드+마요네즈+약간의 꿀을 넣었다. 여름에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기 정말 좋고 빵 사이에 넣어서 먹어도 정말 좋다. 한 번 많이 만들어 놓으면 3일은 먹을 수 있어서 든든한 메뉴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에 5회 이상은 아침으로 먹은 닭가슴살 샌드위치! 닭가슴살은 냉동 닭가슴살을 살짝 팬에 구워서 사용해도 되고 냉장 정육을 사용해도 된다. (냉장 정육에 소금 후추 간만 해서 팬에 구운 게 비교도 안되게 맛있기는 했다.)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빵이 눅눅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분감이 있는 재료는 빵에 닿으면 안 된다. 빵 위에 상추를 올릴 때는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상태에서 올려야 빵이 눅눅해지는 것이 방지된다. 또 빵이 재료에 닿는 면에 소스를 꼼꼼히 발라주는 것이 중요하다. 소스는 스리라차소스+마요네즈를 1:1로 섞은 스리마요 소스인데 내 최애 소스가 되었다. 아니면 치즈를 빵 위에 올려서 재료와 빵이 직접 만나는 것을 막으면 마지막까지 축축이 젖은 빵을 먹지 않아도 된다.
샌드위치를 어떻게 잘 고정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인데, 식품 랩을 이용해서 꼼꼼하게 싸준 뒤에 반 잘라주면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또 등장한 오징어볶음. 정말 자주 해 먹게 된다. 고추는 보라색 가지고추와 엄마가 직접 따왔다는 이름 모를 고추이다. 매운맛이 없어서 맵찔이인 나도 아주 아삭아삭 잘 먹었다. 가지나물은 여러 방법으로 해봤었는데 정착한 방법은 가지를 잘라서 찜기에 찌고 식힌 후, 소량의 멸치액젓+참기름+깨를 넣는 방법이다. 국간장이나 고춧가루 같은 재료를 넣지 않아도 이 방법이 내 입에는 가장 심플하고 맛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채소에 미친 민족이 틀림없는 것이 엄청 큰 가지를 세 개나 쪄도 막상 나물을 무쳐보면 한 두 번 먹을 양밖에 안된다. (샐러드는 한 소쿠리가 나오는 양이다.) 전 세계에서 채소를 한 끼에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임이 틀림없다. 팽이버섯덮밥은 오늘내일하는 버섯이 있길래 해보았는데, 팽이버섯을 팬에 익히다가 소량의 간을 하고 달걀을 넣어서 수란처럼 익혀 먹는 레시피였다. 나쁘지 않았지만 팽이버섯이 집에 있지 않은 이상 일부러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과카몰레는 집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봤다. 아보카도라는 놈은 딱딱에서 말랑으로 가는 과정이 갑자기 순식간에 진행되어 버리기 때문에 매일매일 모니터링을 해주는 것이 필수인데, 바쁠 때는 주기적인 모니터링에 실패해서 어느새 물렁한 단계로 가버리기 일쑤였다. 아보카도를 이 집에 들이고 매일 아침마다 촉진해 가며 모니터링을 해보다가 어느 날 아침에는 지금이야! 촉이 왔다. 마침 집에 모든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어 바로 실행해 본 난생 첫 과카몰레 만들기. 잘 익은 아보카도는 중심부 구 모양의 씨를 중심으로 반을 갈라서 살짝 비틀어주면 두 쪽으로 쉽게 쪼개진다. 박혀 있는 씨는 칼을 살짝 넣어서 비틀면 잘 빠진다. 숟가락으로 과육을 떠주면 아보카도 손질 완료! 사실 손질이 너무 재미있어서 더 하고 싶었다. 손질한 아보카도를 잘 으깨주고, 토마토는 씨 부분을 제외한 과육만 잘 다져준다. 적양파도 잘 다져주고 소금 후추 라임즙으로 간을 해주면 끝! 진짜 라임을 짜 넣었다면 더 제대로 된 과카몰레가 나왔겠지만 아쉬운 대로 마트에서 파는 라임즙으로 대신했다. (왠지 멕시코 음식은 레몬 말고 라임을 써야 제대로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카몰레는 단독으로 먹어도 정말 맛있지만 탄수화물과 함께일 때 베스트! 토스트 한 식빵에 과카몰레를 올리고 부라타 치즈와 올리브오일 후추를 뿌려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한 번 만들어 두었던 과카몰레로 닭가슴살 샌드위치도 업그레이드시켜 보았다. 이렇게 만드니까 정말 무게가 묵직했는데 다 먹고 나니까 세 시간은 배가 불렀다. 전에 먹었던 샌드위치와 레시피는 동일하게 해서 먹었다.
어렸을 때 김밥보다 간단해서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유부초밥은 밥이 단 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짭짤이파인 내 입에는 너무 달아서 그다지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독립을 했기 때문에! 내 입맛에 맞춰 내가 원하는 대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기존의 주머니 형태가 아닌 롤 형태가 특이해서 사 보았다. 단 맛을 줄이기 위해서 유부 절임액을 최대한 짜내고 초밥 양념 소스도 적당히 넣었다. 여기에 초록색으로 깻잎을 추가하고, 스크램블 에그와 캔참치까지 추가해서 헬짱 유부초밥을 만들어 보았다. 맛은 대 성공이었는데 단점이라 하면 너무 밥을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유부초밥도 불을 많이 안 써도 돼서 여름에 먹는 메뉴호 정착!
요리를 자주 하게 된 후 얻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요리를 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 것, 이제 두 가지 이상의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된 것, 제철 식재료로 좋은 요리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요리를 한 가지 하고 나면 주방에 누군가가 폭탄을 떨어뜨린 것 마냥 난리가 났었는데, 이제는 요리 중간중간 어느 정도 정리를 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요리가 끝난 후 치울 때 한숨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보통 하나의 플레이트로 요리가 끝나는 양식과 다르게, 한식은 여러 가지의 음식을 한 번에 해야 한 끼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그래서 한식을 하려면 볶음과 국을 하는 동시에 나물을 쪄내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제는 두 가지 이상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의 음식을 동시에 끝 마쳤을 때는 성취감 마저 든다.
내가 요리를 하기 전에는 어떤 계절에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잘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계절마다 어떤 채소와 과일이 나오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 여름은 감자, 토마토, 가지와 오이로 이것저것 해 먹고, 무화과, 멜론, 포도, 각종 복숭아로 행복한 한 계절이었다.
누군가는 집밥을 삼시세끼 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인생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정말이다! 구석구석 창틀을 닦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