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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예술로 치유하자

by Impresario


1789년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내걸었지만, 혼란과 폭력이 거듭되면서 점점 그 이상이 흐려졌다. 사회는 극도로 분열되었고, 공포정치가 이어지면서 프랑스 민중은 불안 속에 살았다. 이런 시기에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는 예술이야말로 혼란을 극복할 열쇠라고 보았다. 그는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인간의 성숙과 사회적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적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며,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적인 사고와 감각적인 경험이 균형을 이루는 미적 충동이 있을 때, 사회가 조화를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삶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평소에 자주 인용한 구절이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위로하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음악, 연극, 미술, 무용과 같은 예술 활동은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나아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준다. ‘큐레이터(curator)’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단어는 라틴어 ‘cura’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돌봄’과 ‘치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영혼과 육체를 돌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오늘날에는 예술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전문가를 뜻하게 되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돌보고 치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예술이 전쟁 속에서도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역할을 했던 사례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연합국의 군인들은 서로 적으로 싸우면서도 한 곡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나누었다. 독일 가수 마를렌 디트리히가 부른 <릴리 마를렌>은 국적과 이념을 뛰어넘어 많은 군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만큼은 총성이 멈췄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은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을 예술로 치유하기 위해 1946년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를 설립했다.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1947년),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1947년)도 같은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폐전국 독일 역시 극장과 미술관, 박물관을 재건하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다. 예술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갈등과 분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적 대립과 불신이 커지면서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예술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둘째, 도시 곳곳에서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확대해야 한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고, 직접 참여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 셋째, 정신 건강과 사회적 치유를 위한 예술 치료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예술은 개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공동체의 아픔을 나누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넷째, 예술이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술이 상업적 이윤을 위한 도구나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변질되면, 그 본래의 치유적 힘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예술이 온전히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사회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이다. 예술은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치유하는 힘이다. 우리는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예술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치유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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